2010년 3월 27일 토요일

주말에 가볼만한 서울 근교 관광명소 2곳

. 오늘은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주말 가족들과 더불어

가볼만한 서울 근교의 관광명소 2곳을 소개해 볼까 한다.

 

 

. 포천 아프리카 문화원

 

 

아프리카 문화축제를 현재 진행하고있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림리에 위치.

 

 

자연이 숨쉬고 노래하는 광릉수목원 주변 산과 들의 경관에

둘러 쌓여 있는 아프리카 문화원.

 

2006년 6월 26일 개관한 아프리카 문화원은 건설업을 경영하던 관장이

직접 10여년 동안 아프리카 각 나라를 다니면서 유물품, 조각품,

동물박제품, 공예품을 사모아 설립했다.

 

대한민국의 아프리카와 그 문화를 국민에게 알리고 공유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공간이다.

 

 

문화원은 제1전시실, 제2전시실, 제3전시실, 가면전시실, 영상관, 박제관의

상설전시관과 미술관, 조각공원, 공예품매장의 특별전시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아닌카(AANINKA) 라는 이름의 공연단은 코트디브아르 원주민인
게레부족 등 총 10개 부족 출신의 현지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부 아프리카에 있는 코트디브와르의 원주민들로 이 나라의 수도

아비장(Abidjan)의 예술학교 출신들로 전통춤 기능 보유자다.

 

10여 가지 이상의 다양하고 독특한 아프리카의 토속 춤을 선보이며,
이를 아프리카 문화원내 공연장에서 상시 공연한다.

 

축석 검문소에서 광릉 수목원 방향으로 2.2km 우측,
광릉수목원에서 (의정부, 포천)방향으로 약 5.2km 좌측

 

문의처 : 031-543-3600

 

http://www.xn--oy2b15swmh7xg.kr/

 

 

 

 


.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중남미 문화원

 

 

 

국내 유일의 중남미 관련 박물관으로 홍갑표 이사장이 설립.

 

30년 동안 코스타리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에서
외교관 생활을 오래한 이복형 원장 부부가 수집한 3,000여 점의

중남미 문화유산이 모여 있는 곳.

 

 

제2회 고양 건축문화대상을 받았으며 마야·잉카·아즈텍 문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다.

 

http://www.latina.or.kr/

 

ref site :

라틴 문학에 대한 사이트

http://latin21.com

 

중남미 문학의 거장인 보르헤스 란 문학가의 삶을 살펴보면 참으로

묘한 생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그는 수많은 시집과 소설집을 (poet와 novel) 을 써낸 중남미 문학의

정수로써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장에 취임하는 해에 눈이 멀게 되는데

그때 그는 " 축복의 시 " 라는 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사연을 알고 이 시를 감상한다면 더욱 더 그의 문학이 가슴 속에

강하게 남을 것이다.

 

축복의 시-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축복의 시


- 마리아 에스테르 바스케스에게



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 내리지 말기를.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
나의 허심탄회한 심경을.



신은 빛을 여읜 눈을
이 장서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여명마저 열정으로
굴복시키는 몰상식한 구절구절을
내 눈은 꿈속의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을 뿐.
낮은 무한한 장서를 헛되이
눈에 선사하네.



알렉산드리아에서 소멸한 원고들같이
까다로운 책들을.



(그리스 신화에서) 샘물과 정원 사이에서
어느 한 왕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갔네.



높고도 깊은 눈먼 도서관 구석구석을
나도 정처 없이 헤매이네.



백과사전, 아틀라스, 동방,
서구, 세기, 왕조,
상징, 우주, 우주론을
벽들이 하릴없이 선사하네.



도서관에서 으레
낙원을 연상했던 내가,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텅 빈 어스름을 탐문하네.



우연이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필시 이를 지배하리니.



어떤 이가 또다른 희뿌연 오후에
이미 수많은 책과 어둠을 얻었지.



느릿한 복도를 헤매일 때
막연하고 성스러운 공포로 나는,
똑같은 나날, 똑같은 걸음걸음을 옮겼을
이미 죽고 없는 그라고 느낀다.



여럿인 나, 하나의 그림자인 나,
둘 중 누가 이 시를 쓰는 것일까?



저주가 같을지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 중요하랴?



그루삭이든 보르헤스이든,
나는 이 정겨운 세상이
꿈과 망각을 닮아 모호하고 창백한 재로
일그러져 꺼져 가는 것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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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장서에 둘러싸여 언제든지 이 세상의 어느 서적이든 손에

접할 수 있을, 국립 도서관장에 오름과 비슷한 시기에 안타깝게도

그는 장님이 되지만, 그 이후 독특한 그 만의 영감과 상상력을 통한

시혼으로 소중한 보르헤스 문학을 중건하기에 이른다.

 

무릇 음악의 거성 베토벤이 귀먹어리 였듯,놀라운 중남미 문학의

귀재인 보르헤스 역시 시력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거대한

호르헤 보르헤스 문학의 아성을 건설한 면모를 볼 때, 인간의 능력은 거의

한계점이 없다 란 생각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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