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7일 화요일

[화제]-前 일본재벌이 한국서 꼬치구이 굽는 까닭은 ...

이태원 선술집 '문타로' 우스야마 사장



▲ 일본의 기업회장이었던 일본인 우스야마 스미오씨가 경제위기로 부도가 나면서 쫓기듯 한국에 와서 아내 전은현씨와 서울 이태원동에서 꼬치구이집으로 재기에 성공했다.6일 저녁 평일인데도 우스야마부부의 꼬치구이집 '문타로'는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손님으로 넘쳐난 가운데 부부가 요리와 서빙에 서로간에 눈길 한번 주지 못할 정도로 바삐 움직였다. /이진한 기자 


각종 포털사이트 유명 맛집 블로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居酒屋)이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문타로(文太郞)'다. 지하1층과 1층을 합쳐 50평 정도 되는 가게에 매일 저녁 주당(酒黨)들로 만석(滿席)을 이룬다.

 

닭고기나 닭 모래주머니를 대파·토마토·아스파라거스 등과 함께 대나무 꼬치에 꽂아 숯불에 구운 야키도리(��鳥)하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굴 튀김, 뽀얀 국물이 묵직하면서도 시원한 나가사키 짬뽕이 주 메뉴다.

 

2005년 생긴 이 집이 '대박'을 친 것은 2년 전 회색 콧수염이 난 일본인 우스야마 스미오(臼山純雄·55)가 들어오면서부터다. 그렇다면 그는 비장의 요리법을 터득한 음식의 고수였을까?

 

문타로에 오기 전까지 우스야마는 부엌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의 전직은 놀랍게도 규슈(九州) 가고시마현(鹿兒島縣)에서 가장 큰 유통회사였던 주오류쓰(中央流通)의 회장이었다.

 

 

▲ 6일 저녁 이태원 문타로에서 우스야마가 꼬치를 굽고 있었다. 제일 자신 있는 요리는 숯불에 살짝 구운 주먹밥이다. 그는 “2년 동안 최악의 상황에서 다시 최고를 향해 돌아선 기분”이라고 했다. / 이진한 기자

 

주오류쓰는 4년 전까지 일본 최대 물류기업 '사가와규빈(佐川急便)'의 가고시마~후쿠오카 물류를 독점한 회사다. '회장님'이었던 그는 왜 서울 이태원의 작은 주방에서 꼬치구이에 몰두하고 있는 걸까?

 

우스야마는 규슈 이부스키(指宿)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했다. 산 속 허름한 집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우스야마의 꿈은 맛있는 음식을 배가 터지도록 먹으며 사는 것이었다.

 

방학 때마다 짐 싣는 일을 해 50만엔을 모았다. 우스야마는 고교를 마치자마자 4t트럭 한 대를 샀다. 짐칸에 산골에서 나는 감자·양배추·당근·소라마메(蠶豆·누에콩)를 싣고 후쿠오카의 이모 가게에 가져다 팔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물류회사에서 주스·음식·옷 등을 운송해주는 대신 돈을 받았다. 3년간 자는 시간도 줄이고 일한 그는 21세 때 작은 운송회사를 차렸다. 15t트럭 한 대가 두 대, 세 대로 늘었다.

 

겁 없이 시작한 사업은 3년 만에 겁 없이 망했다.

 

그는 이 때 진 빚을 서른이 넘어서도 갚아야 했다. 우스야마는 1989년 주오류쓰를 차린다. 당시 일주일간 일본여행을 하러 온 한국인 전은현(51)에게 반해 1990년 결혼했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빚도 정리되기 시작했다. 전성기인 1995년에는 15t트럭 200대와 한 대에 1억엔짜리 냉동차 50대를 거느렸다. 2층 저택에 살았고 벤츠 2대와 폴크스바겐을 굴렸다.

 

일감이 넘치는 날에는 직접 화물차를 몰기도 했지만, 양복을 빳빳하게 다려입고 책상 앞에 앉아 펜으로 서명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랬던 주오류쓰가 2006년 12월 파산하고 말았다.

 

주변 운송회사 보증을 서줬다가 6억8000만엔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빚이 계속 불자 당시 가고시마 지역 언론은 "주오류쓰가 빚 50억엔을 지고 파산 위기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우스야마는 냉동차·트럭에서 집 안에 있던 장롱·식탁·TV까지 모두 팔았다. 2008년 기업파산신청이 받아들여지자 부부는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들에겐 짐 가방 하나가 남아있었다.

 

전은현은 "나도 당신을 위해 20년 가까이 타국에서 살며 힘들었다. 그 20년을 갚아준다고 생각하고 살아달라"고 했다. 이태원에서 문타로를 하고 있던 전은현의 조카 문근천(33)이 손길을 내밀었다.

 

"꼬치구이집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해보라"는 것이다. 부부는 이후 문타로에서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일하고 있다. 우스야마는 처조카에게 불 앞에서 꼬치 굽는 법을 배웠고 전은현은 음식을 날랐다.

 

초반에는 하루종일 서서 매캐한 연기를 맡아 병원에 다녀야 했다. 전은현은 "멋쟁이였던 남편이 주방 구석에서 엉거주춤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면 미치도록 힘들었다. 4개월간 나도 같이 설거지를 거들었다"고 했다.

 

우스야마는 "게랑찡(계란찜)·오뎅땅(오뎅탕)처럼 말도 어렵고 한국 음식도 입에 맞지 않다. 손님들이 말을 걸어도 외계인이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손님들은 오히려 아무 말 없는 우스야마를 좋아했다.

 

"분위기가 남 다르다"며 CF 모델 제안도 4번 들어왔다. 아내는 남편을 북돋았다. "우리 우스야마는 오뚝이 같아서 꼭 일어날 거야. 예순이 넘으면 성공해서 꼭 일본으로 가자." 작년 11월 우스야마 부부는 문타로의 주인이 됐다.

 

처조카가 작년 3월 청담동에 꼬치구이 집을 차려 나가며 넘겨준 것이다. 처조카는 "어릴 적 일본으로 간 친형에게 부모님과도 다름없이 도움을 준 분들"이라며 "일본에서 뵌 매형은 늘 열심히 일하던 모습이었다"고 했다.

 

부부는 그동안 서울 상도동의 처조카 집에 얹혀 살다가 성산동에 23평짜리 전세 아파트도 얻었다. 2년 동안 옷 한벌 안 사입고 땀 흘려 일한 대가다. 정식 주인이 되고나서 3개월 동안은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우스야마는 "나락으로 떨어진 순간에 한국에서 다시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부부는 2개월에 한번씩 가고시마에서 말고기, 닭 간 등 신선한 꼬치구이 재료를 들여온다. 화요일인 6일 오후 7시 문타로 입구는 장사진을 이뤘다.

 

우스야마가 불 앞에서 꼬치를 굽다 입을 열었다. "내게 인생은 인내(忍耐)인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참고 견디면서 꼬치를 굽다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그때가 되면 남극에 가서 소주를 마시고 싶다."

 

 

한경진 기자 kj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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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변천사
http://seoultour.textcube.com/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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