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8일 월요일

로마인이야기 제6권 '팍스 로마나'(Pax Romana)


Dar Williams - After All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

 

오늘은 살륙과 공포로 세계를 점령했던 칭기스칸 군대에서 잠시 벗어나,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의 뒤를 이어 팍스 로마나 시대를 구축하고, 로마를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변화시킨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 해볼까 하는데, 팍스 로마나 라 함은 로마인에 의한 화평이란 의미인데 '로마인 이야기'를 저술한 시오노 나나미 작가의 제6권 [팍스 로마나]에 기술되어 있는 글 대목들이 너무 좋아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먼 뒤안길에 선 후세인의 자격으로 몽골의 칭키스칸 대왕과 아우구스투스의 정복과 팍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과연 무자비한 전 세계 정복전 후 칭기스칸 대왕이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기 얼마전 알렉산드로스에서 건너온 선원에게서 받았던 그 축복의 노래에 관한 진수를 칭기스칸에게 들려 주었더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팍스에 관해 변명할 것인가에 대해서 ...  잠시 상념 속에 스쳐가는 그 뭔가가 있었습니다.

 

 

 


천재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천재가 아닌 인물이, 천재가 이루지 못한 목표를 어떻게 도달할 수 있었는가에 관해 일생에 걸쳐 후세인들에게 깊은 가르침을 준 로마 초대 황제 - 아우구스투스의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제6권 - "팍스 로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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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 이후 고대 로마에 대한 서구 역사가들의 평가를 요약해 본다면, 공화정 시대는 존경할 만 했지만 제정 시대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로마는 타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사가 토인비 조차 로마의 공화정을 제정 정치체제로 바꾼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은 로마의 쇠망을 다만 늦추었을 뿐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성자필쇠가 역사의 필연 법칙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설령 토인비의 말이 옳다고 인정해도, 로마가 제정으로 바꾼 뒤 수백년이나 지난 뒤에야 쇠망한 그런 정도의 유구한 세월이었다면 그런대로 그 시절에 적확한 정치체제 시행이 아니었을까 ? 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흔히 역사가들 사이에 로마 제정 시대에 오히려 자유가 더 사그라 졌다는 일부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고 외치는 자유란 그 당시까지 폐쇄적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하며 로마의 의사를 대변하였던 600 여명의 원로원 의사권자의 권리이자 자유이었지, 로마제국 산하 6천만 전 주민의 자유권은 오히려 형편이 더 나아졌으며, 또한 그네들에게 더 호평 받았다는 점에 우린 주목해야만 한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팍스 로마나' 시절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로마가 융성한 요인은 패배자들까지도 동화시켜 버리는 로마인의 정신에서 였다. 그리고 그 혼은 공화정에서 제정시대로 바뀐 뒤에도 바뀌지 않는다.

 

로마인은 시대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그 스스로 정치 형태를 여러 형태로 바꾸면서 계속 현실화 하며 존속해 왔다.


하지만 그들의 혼이라 불러야 할 생활방식의 근본과 근간은 계속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효율적인 국가운영과 평화 확립이라는 시대적 요청 앞에, 국정을 결정하는 600명 원로원 권리가 과연 사수할 만한 가치를 갖고 있었을까? 우리 인간은 항상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 중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카이사르도 선택했지만 아우구스투스도 그 시대 요청에 적절히 부응하기 위해 정치체제를 선택했다.


그 결과가 바로 공화정을 서서히 페이스 아웃시키고 로마 제정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로마사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자인 애드콕 교수는 <캐임브릿지 고대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이 통치하는 국가형태는 그 시기의 로마에 정치적 필요 사항으로 이미 확립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국가형태를 확립한 주인공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카이사르 같이 압도적 두뇌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의 세계는 바로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인물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기 조금 전, 이태리 나폴리만을 유람할 때 잠시 들른 포추올리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부터 방금 도착한 상선의 승객들과 선원들이 가까이에 닻을 내리고
있는 배 위에서 쉬고 있는 늙은 황제를 알아 보았다.

 

선상에서 사람들은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입을 모아 황제에게 외쳤다.

 

'
당신 덕택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이루어 지는 것도 ...
당신 덕택입니다. 우리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도 ...
당신 덕택입니다.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 갈 수 있는 것도 ...
'

 

이 예기치 않은 찬사에 늙은 아우구스투스를 진심으로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사람들에게 1인당 금화 40닢을 주라고 지시했다. 다만 그 금화의 사용처에 조건을 달았다.
그 돈으로 이집트 물산을 구입하여 다른 곳으로 팔라는 것이었다.


늙어서도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여전히 냉철하고 현실적인 남자였다.

 

물산이 자유롭게 유통되어야만 제국 전체의 경제력이 향상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해 주는 것이 바로 평화(PAX) 임을 벌써 깨우친 황제이기도 했다.

 

(전쟁만 지휘했다 하면 번번히 패배하던 아우구스투스는 33살 때 이후부터 77세 숨을 거둘 때까지 다시는 로마군대를 직접 지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군대를 지휘하지 않았다고 군사령관이지 않았던 적은 없었으며 로마 제국이 계속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서서히 정치체제를 제정으로 확립시킨 대업을 달성하고 임기 말년 '포추올리의 선원 칭송 사건'  이후 얼마 안 지나 8월 18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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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 제국 시절의 화평은 로마 제국이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을 최소화 하면서 오랜 평화를 누렸던, 1 ~ 2세기 경을 말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대통을 이어받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시기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 아우구스투스의 평화(Pax Augusta) ’로 불리기도 하는 이 시절은 대략적으로 BC 27년 경부터 AD 180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시절에는 고대 로마 역사상 유례없는 태평성대 시절이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군사적인 충돌이 전혀 없었던 건 물론 아니다. 황제들은 이따금 발생하는 속주의 반란에 즉각적으로 대처해야 했으며, 국경 지역에서는 소소한 교전이나 대규모 정복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파르티아와의 전쟁도 치렀으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통치 후반기를 대부분 게르마니아 전선 등 최전선에서 지냈다.

 

한편으론 로마의 평화가 유지되려면 필수 불가결한 로마 민중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빵과 서커스가 조달되어야 했으므로, 이것들의 착취가 식민지 도처에서 일어났으며, 결국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 민중들에겐 평화 유지를 위한 폭력과 착취로 고통받는 시절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최소한 팍스 로마나 시절에 거대한 로마 제국 국경선 안쪽에서는 강도나 도적들의 습격이나 외부 야만족들의 공격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시절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팍스 로마나 시절 때엔 기원 3세기경 로마제국의 위기 때처럼 격렬한 내란이나, 2차 포에니 전쟁 때 한니발 장군의 로마 침공 같은 강력한 외적의 침공없이 상대적으로 그런대로 평화로웠다.

 

또한 이 기간 동안 로마의 상업은 융성하였으며, 해적이나 약탈군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후세 역사가들은 이러한 시절에 비유해 "팍스 로마나"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강대국의 폭력에 의한 가짜 평화가 등장할 때에 팍스 란 신조어를 만들어 내게 된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팍스 오토마나(Pax Ottomana) 등 같은 용어가 그 실례일 듯 하다.

 

 

 

. 소나기의 유럽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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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니의 이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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