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일 금요일

밥 딜런 내한공연 기념 bbc 다큐멘터리 "No Direction Home Bob Dylan - 2005" 방영

세계를 관통하는 뮤지션 - 밥 딜런

 

" 밥 딜런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낄수 있을 수 있는 개인적인

고뇌와 실존적 자유의지를 대변하는 대표적 음악 뮤지션이기에

더욱 위대하다 ! "

 

자유로운 음유시인이자, 철학적 삶의 고뇌를 호소하는 아웃 사이더로써

단숨에 일상적인 느낌을 곡으로 작사했으며, 또 작곡했고 노래를 부르며

한 시대를 풍미하며 모든 이들에게 집단 무의식적 공명심과 자유의지를

불러 일으키고, 시대정신의 영향력을 극대화 시킨 놀라운 가수였다.

 

. Bob Dylan 의 음악 여정

1960년대는 포크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니치 빌리지의 모던 포크가 태동했으며 포크와 록이 결합한 것이 역시 60년대만이 지닐 수 있는 특수성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큰 의미는 밥 딜런비틀즈의 등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64년 초 비틀즈가 지구촌 팝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으나 이에 앞서 20세기의 밥 딜런이 1962년 초에 소위 프로테스트-포크의 기수로 등장해 멜로디로 듣는 음악의 상징은 비틀즈요 노랫말로 듣는 음악의 대명사는 딜런으로 1960년대의 팝계를 양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딜런과 비틀즈는 50년대까지 주로 고찰되어 왔던 4분법(작사, 작곡, 반주, 노래하는 이들이 각각 다른)을 뛰어 넘어 소위 싱어송라이터의 시대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전무후무한 창작력을 발휘 팝, 록의 황금기로 알려지는 르네상스 시대를 열게 한 장본인들이다.

음악을 통해 인종차별, 핵사용, 전쟁 등 지워지지 않는 오류를 고발하고 크게는 사회문화 가치관 등을 변화시킨 밥 딜런. 그는 타고난 저항의식으로 다작을 하는 사회운동가였으며 그 시대의 이해와 이상을 강력하고도 분명하게 표현했던 예술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밥 딜런의 음악은 그의 선배격인 우디 거스리 와는 조금 달라 보인다. 우디 거스리에서 출발한 당시 미국 포크는 지식인층에게는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는 못한 포크였다.

 

그럴만도 한 것이 우디 거스리의 음악은 동부의 상당히 엘리트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다. 따라서 거스리나 피트 시거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중보다는 백인들의 취향에 맞는 고운 음색과 통기타의 깨끗한 공명위주의 음악이 포크라는 인식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포크의 가사는 대중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했으며 멜로디는 빈곤과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중들에게는 너무나 티없이 맑고 깨끗한 것이었다.

그들은 항상 포크란 트레디셔널 포크 이외에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 강했으며 이로 인해 그들 음악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민요들이 고갈되자 점차로 매너리즘이라는 깊숙한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밥 딜런의 포크는 이러한 포크의 순수지향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의 가사는 매일 같이 접하는 신문의 기사 내용의 인용과 그것에 대한 상징들이었으며 당시의 이슈를 자신의 노래로 표현했던 것이다.

 

또한 그의 음악적 뿌리에는 흑인음악의 생명력이 넘치고 있었으며 이는 그의 음악적 변화에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흔히들 딜런의 음악은 크게 세 시기로 구별될 수 있다고 한다.


첫째로 61년부터 64년까지의 순수포크음악으로서의 시기이고, 둘째로 64년부터 75년까지의 포크락으로서의 시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후 81년까지의 크리스찬 가스펠로서의 포크시기로 구별될 수 있겠다.

 

이러한 개괄적인 구별은 다시 두 번째 시기에서 73년 이후의 어사일럼으로 이적한 이후 발표한 앨범들의 시기와 75년부터 79년까지의 창작활동의 중단 시기,그리고 79년부터 81년까지의 몰락시기로 세부적으로 구별될 수 있다.

최초의 딜런의 음악은 당시의 지배적인 카운터 컬처로서 서서히 그 위세를 발휘하고 있던 프로테스트 히피 컬처의 또 하나의 뛰어난 작품들로서는 손색이 없었지만, 이 시기의 딜런처럼 스스로가 하나의 문화를 창조하고 그 문화의 범형으로서 끊임없이 역동하던 '거인의 완전한 현전'에 미치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남들이 정치적인 만큼 정치적인 노래를 만들었고, 남들이 독창적인 그만큼만 독창적이었다. 그러나 65년을 기점으로 발표되기 시작한 그의 노래들은 이전의 그의 노래들과는 완연히 그 형식에서나 내용에 있어서 다른 것이었다.

 

아직 맹아적인 형태로만 있었던 다양한 시도들이 완전히 성숙한 형태로 승화되었고, 노래의 골간을 이루는 시들의 내용은 단지 교훈적이거나 현실비판적인 정치적 저항의 경계를 넘어서서 자유롭고도 다양한 삶의 진정성에 대한 경의와 탐험을 거침없이 보여 주고 있다.

 

 


이런 평을 받는다는 밥 딜런은 그래미 어워드 평생 공로상을 받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대중 음악계의 대표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천재적인 뮤지션이다.

 

하모니카와 어쿠스틱 키타를 튕기며, 비음이 섞인 그만의 독특한 음색

철학적인 가사, 진솔한 메시지 등을 통해 전 세계의 팬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초반에 인종차별 반대, 반전, 반핵 등 정치적이고 사회성 짙은

음악을 끊임없이 발표하며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나

다시 그는 초사회적인 음악으로 방향을 틀어 버리고, 전기 기타와

드럼이 섞인 밴드와 같이 공연을 기획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그는 포크음악과 록 음악을 결합한 파격적인 음악스타일로 새로운

장르를 연 음악 혁명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각종 수많은 음악을 직접

작사 작곡하며 또 연주도 한 진정한 뮤지션이며 문화 창조인이기도 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밥 딜런도 노년기가 되었지만

정열적인 노래로 금번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3월 31일 역사적인

내한공연을 주도했던 밥 딜런을 기념하여, Xtm Special 케이블

TV 에서 특별 방송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한 ' 밥 딜런의

다큐멘터리' 을 방송했는데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이 엿보이는

멋진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 No Direction Home Bob Dylan - 2005 - 1/2


http://v.youku.com/v_show/id_XMTAxOTIyNDQ4.html

 

. No Direction Home Bob Dylan - 2005 - 2/2


http://v.youku.com/v_show/id_XMTAxOTI1NDky.html

 


. 케이블 채널 XTM 3월 31일 오후 10시 `밥 딜런-노 디렉션 홈`

(2005 영국) 방송

 

`밥 딜런-노 디렉션 홈(No Direction Home Bob Dylan - 2005)`

다큐멘터리 영화는 `택시드라이버`, `좋은친구들`, `에비에이터`

등을 연출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밥 딜런의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

로서 격렬한 시기를 보낸 1966년까지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영화.

 

전기(傳奇) 영화 답게 밥 딜런을 포함한 동시대 음악인들과의 인터뷰와
다양한 기록영상이 쉴새 없이 교차되며 비판적인 시선도 가감 없이

드러난다.

 

밥 딜런은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avens Door),
‘라이크 어 롤링스톤’(Like a Rolling Stone) 등의 노래로
유명한 팝 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60년 첫 앨범을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100장이 넘는 앨범을 내놓으며
‘작곡가 명예의 전당’,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20세기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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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래를 들으면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이 영혼과 육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고 한다.

 

때로는 아주 낮게 절규하다가, 어느땐 화가 난 성난 사람처럼

톤을 높이고, 어떨 땐 신 들린 짚시처럼 나직히 읊조린다.

 

음유시인처럼 나직한 읊조림과 멜로디의 경계를 허문 놀라운 가수.

 

대중가요의 뻔한 가사들과 초현실주의 시를
뒤섞어 요리할 줄 아는 마술사 같은 사람.

 

밥 딜런 아니면 이런 가사를 절대 쓸 수 없는 ...
 
혀에 날개를 단 이 사람.

 

Like a Rolling Stone ...  / 구르는 돌처럼 ...

 

롤링스톤’지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1위로 꼽힌 명곡을

만든 사람. 

 

그래서 밥 딜런의 투어를 “Never Ending Tour”라고 부른다고 한다.

 

1988년 6월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그의 투어.
구르는 돌처럼 ... 아직도 ing 중이다.

 

한국의 유명한 포크계의 거성 한대수 씨를 낳고, 한국의 저항노래

대표곡 이 된 '아침이슬'의 김민기 씨, 양희은 씨를 키웠으며

1970년대 박정희 철권독재 시절 장발단속을 당하며

대학생 모두 합창했던 통기타 세대의 전설적인 송가가 된

한국 포크계열 7080 가수의 존재들을 연기, 연출한 장본인.
 
이렇게 여러 세대의 추억을 머금은 사람들이 모두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 그와 함께 어울져 있었다.

 

밥 딜런은 31일 오후 8시 올림픽공원 체조 경기장에서 내한공연을

성공리에 끝내고 아무런 인터부도 없이 조용히 출국했다고 한다.

 

미국의 전당 카네기 홀에서 노래를 부른 유명한 한국의 국민가수

조용필 씨가 얼마 전 환갑을 맞이 했다고 한다.

 

이제 밥 딜런 씨와 같은 모든 인기와 시대정신과 팝을 선도한

이런 이들이 점점 늙어가며 원숙하고 통찰적인 영혼의 엑기스가

철철 넘쳐나는 천재의 쉰 목소리에서 우린 인류의 위기에 대한

지혜를 찾아야 한다.

 

인간은 가장 강렬한 위기 속에서 변화하고 진화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에 ...

 

밥 딜런 !

 

그의 길고도 오랜 말년의 무운과 기운찬 노익장(enjoy a green old age)을

신께 기원 드린다.

 

 

http://p21kino.egloos.com/2170476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4004&article_id=35287


http://blog.naver.com/noisecat/100102884792


http://blog.naver.com/mzmania/10083701556

 

 

 

그리고 첨부 하나.

 

 

' No Direction Home Bob Dylan - 2005 ' 다큐멘터리에

종종 출연하는 Johnny Cash

 

 

Johnny Cash 불후의 명곡 - I Walk The Line

 

Johnny Cash-ghost riders in the sky

 

ref web page :

http://seoultour.textcube.com/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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