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This Blog Translate Korean => English [11]~6 This Blog Translate Korean => English
[25]~21 This Blog Translate Korean => English [30]~26 This Blog Translate Korean => English
[45]~41 This Blog Translate Korean => English [50]~46 This Blog Translate Korean => English
"생선집에 유숙하는 도둑고양이에 관한 몽상"
생선집에 유숙하는 도둑고양이에 관한 몽상 히틀러가 붙잡혔다. 몇몇 무리들은 재판정으로 압송하기 전 어떤 호텔방에 유숙했다. (꿈 속에서) 히틀러는 거인처럼 키가 커보였다. 마지막 밥을 시켜 줬는데 어린아이들이 들어와 성가를 부른다. 히틀러는 함박스텍을 간단히 비우고 나서,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 요리를 먹고는 그 아이들에게 뒷주머니에서 한뭉치 돈을 꺼내 듬뿍듬뿍 안겨준다. 이런 xx tt ... 나는 그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한다. -야 히틀러 이루와 봐. 잠깐 바람이나 씌러 나가자. 그리곤 남의 이목을 피해 밖으로 나가선 레닌그라드에서 피 본걸 세세히 듣는 척하며 호시탐탐 히틀러의 주머니 쌈지돈을 노린다. 결국 썩어 없어질 돈. 그거 나 주구례 하는 집요한 시선으로 ... 결국 히틀러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 눈을 떠본다. 세상에나 만일 히틀러 였더라면 그때 그 당시 얼마나 도망치고 싶었겠는가? 그래 그갖 주머니 쌈지돈에 눈이 어두워 온 세상 천지에 쌍불켜고 인류에 엄청난 과오를 저지른 히틀러 고놈을 재판정에서 지둘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구선 호텔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살살 농이나 치는 아무래도 중-죄인을 호송할 직업을 가지면 절대 아니될 둣 하다. 제발 고양이에게 결코 생선집을 맡기지 마라! Coldheart by Passion 그대여(註.1) ! 넌 파면이야! 오늘 부로 ... 어떤 시련 또는 수난에 의해 얼음장처럼 차가와진 심장이여! 그럼으로 우리는 세상의 가장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찾아야 할지니 ... 가장 혹독하고 악랄한 독재자 쌍두마차였던 히틀러와 스탈린이 첫번째로 제대로 붙은 레닌그라드 전투에서 히틀러가 말하기를 자신은 그때부터 과대망상증이 점점 심화되었고, 스탈린은 그 권능을 타인에게 겸허하게 양도하기 시작했었기에 자신은 이 전투에서 스탈린에게 깨졌노라고 실토하더라만은 ... 히틀러 그 넘은 결국 도망치지 않았다. 꿈속에서 말이지. -아무래도 말이지. 요즘 판타지 소설을 읽어보면 캐릭터라든가 모든 작업 구성 및 몬스터 개념들이 서양 즉 유럽의 중세시대를 연상하게 된다는 거야. 애당초 서구 문물에 익숙한 신세대들이 외국 판타지 소설을 접하다 보니 더욱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거야. 한 때 무협지에 미쳐 "무림혈서"로 80년대 초엽에 데뷔해 33살로 요절한 천재 서효원이 소설은 1천여 권이 넘는 그 작품들을 약 10년 간에걸쳐 발표하고 암으로 죽었었을걸 아마? 그 사람 작품은 단 한 권도 빠뜨린게 없었을 정도로 광이었는데. 그렇지만 이젠 발상을 바꾸어야 할 시점이 온것 같어. 왜냐면 이젠 오히려 서양보다는 중국, 한국, 일본을 위시한 동양권 시장이 더 광범위하다라는 거야. 이제 서양 중세시대으 판타지 무대를 무협지 에 접목해서 무대를 바꿔야 먹힌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요즘 판타지가 무협지를 압도하잖어. 게임과 상업성들과 긴밀히 연관이 되어 있으니 어떻게 그 큰 골격은 어찌 못한다 해도 그래도 너무 사대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냔 얘기야 내 이야기라면 이야기인즉슨 ... 야 이 쉐꺄 !!! 너 지금 술 취해 자빠져 자냐? 이런 쓰 ㅁ ㅇ ㅏ ....... -으흠 ... 엃ㅁㄴ 눈을 떴다. 매캐하고 수캐더분한 비린내.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다. 술에 취해서도 그랬다라지만, 오헤려 그것보다는 온 사방 사위가 너무 어두웁다.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대체 여기가 어딘가? 아아! 그리고 이 내장이 썩어가는듯한 고약한 이 냄새는? 나는 다이 밑을 설설 기어 밖으로 나온다. 내가 ... 내가 저 몇십년도 더 묵었었을 저 생선가게 판매다이 밑으로 간밤에 도둑 고양이처럼 기어 들어가 그 기둥을, 저 썩은 기둥을 부여잡고 대체 뭘 했더란 말인가? 얼핏 짐작에 저 기둥을 마구 햛었는가 보다. 온 입가에 생선 찌거기들와 온갖 잡 생선뼈 같은 잡쓰레기들이 입가에 붙혀져 있다. 아니 저걸 내가 뭘로 착각하고, 밤새 핣았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저 낯익은 시장통 생선가게 다이 밑에는 왜 들어갔더란 말인가? 얼굴이 후끈거린다. 이 꼴 아니 그 때 그 꼴을 동네사람 누구라도 봤더라면 대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것인가? 무조건 아무데라도 숨고 싶다. 다행인건 아무도 없는 늦은 신새벽이라서인지 아니면 날씨가 너무 추워서인지는 몰라도 인적이 전혀 없다. 나는 공원 옆 공중변소로 목발이 날 끄는 것인지, 내가 목발에 끌려가는 건지 잘 모르는 채 가선, 더러워진 옷가지와 입가를 닦고 또 닦고 헹구어 냈다. 아아! 혓바닥 끝자락이 너무 시리다. 내가 저 썩은 기둥을 대체 뭐라 여기며 혀끝으로 핣았단 말인가? 나는 입을 헹구고 또 헹구기 시작했다.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어마어마한 구토물과 함께... 공원 벤치에 가만히 드러누워 지난 밤 일들을 떠올려 본다. 하늘에 화성별빛이 참 어스름차다. 목발을 벤취 옆에 놓고 벤치에 가만히 드러 눕는다. 별아. 별아. 어젯밤 아는 동네친구 창만이와 술을 마시다 너무 취해 헤어져선 밤길을 이리저리 헤매다니다 추워선지, 시장통 어디녘으로 기어 들어 가기는 갔는갑다만. -아 어지러. 약국문 언제 열지?. 오라메디 연고 빨리 사서 발라야 되는데, 혓바닥 따가워 미치겠네 이거...
꿈과 현실에 관한 몽상꿈과 현실! 이상과 현실이란 결코 결합치 못할, 아니 영원토록 맞닿지 못할, 그런 평행선. 철길 사이로 난 레일. 어느날 난 청자 도자기가 생각났죠. 천년이 흘러도 변치않을, 그런 오묘한 코발트 빛깔의 색조와 문양말입니다. 나는 하염없이 철길을 걷고 또 거닐었죠. 헤매였다 말해야 할런지요. 신촌역 철뚝길로 난 레일 위를 달려 보기도 했으며, 스카이 콩콩 널 뛰듯, 뛰기도 했었죠. 무척 외로웠어요. 이 철길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가면 어디가 나올 것인가? 저 고려청자 문양과 색조처럼 아늑한 묘혈으 무릉도원이 혹여 닿진 아니할까 말이죠. 철길은 나란히 마주보고 그렇게 서었었죠. 현실과 이상은 필시 서로 마주한 레일과 레일이어야만 할까요? 그 거리를 두고 끝없이 마주 보고 가야만 할 직성이 풀릴 상이한 명제여야만 할까요? 허나 그 두 개념이 이질적인 아니 배타적인 명제이기만 해야 한다는 건 좀 의문이 가는 일입니다. 쉬운 일례로 현실과 이상이란 용어를 대신 한 번 과학과 예술이란 명제로 바뀌 대입해 보기로 하죠. 현실과 이상! 그 둘 사이로 난 레일과 레일에서 처럼, 서로 맞닿지 아니한 공간장을 사이에 둔 배격적인 명제는 예술과 과학이란 두 가지 명제에서도 쉽게 비유될 수 있는 일인거죠. 이를 알기 쉽게 다시 풀이 하자면 과학자들은 단순화를 위해서, 예술가들은 복잡화를 위해서 자기가 추구하는 어떤 의미를 지닌 예술품을 창조해 내게 됩니다. 다시 말해 과학자들은 전체를 하나하나 분해하고, 분석함으로써 미지의 세계에 대한 예언을 추구하는 것이고, 예술가들은 부분들이 개별적 의미를 지니게끔 그것들을 종합화 해냄으로써 그 부분 총합 이상의 어떤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내는 예술 매개체를 추구하는 거지요. 그럼으로 인해 과학자들은 분석화 작업을 통해 일반화 법칙을 추구하는 것이고, 예술가들은 종합화 작업을 통해 개별화된 개체군들을 총합적인 어떤 의미의 매개체로 추구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실과 이상은 서로 그 상이한 작리에 의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은 존재라는 매개체를 통해 생활, 삶을 추출해 내는 것이며, 이상은 꿈이나 환시를 통해 어떤 가상 세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거라 말씀 드릴 수도 있을 겁니다. 흔한 말로 예술가가 창조한 예술품은 그것을 잊어 버리면 재창조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베토벤 그 자신에 의해서 재 창조 될 수가 없는 것에서 처럼 ... 그렇다면 비평가는 과연 과학자 입니까? 아니면 예술가 인가요? 비평가가 하는 일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어떤 사물에 대해서 분석하는 일도 수행하고, 종합적인 어휘도 구사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비평가는 과학자이면서 그와 동시에 예술적인 작업을 수행해내는 사람이라 표현해야 할 것 같군요. 비평이란 그 두가지 서로 이질적인 요소를 서로 상반되는 개념으로 다뤄내기 보다는, 서로 상호 보완적인 개념으로 적절히 잘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양수겸장 작업을 잘 수행해 내는 그래서 그 안목을 적절히 문서화 글 작업을 통해 표현해 내는 일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술과 과학! 그 서로 상반되는 명제, 아니면 개념이라 말해도 좋습니다. 그 개념을 배격해 내는 것보담, 오히려 그 두가지 명제를 적절히 상호 보완적인 개념들로 잘 혼용할 수 있는게 우리에겐 중요합니다. 우리들도 현실과 이상 그 사이를 잘 아우르면서 서로 널뛰기를 하며 삶! 그 어려운 도정을 살아내야 할 것이 아니잖겠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예술과 과학! 이 서로 상반되는 개념도 어떻게 잘 혼용하느냐 라는 비평화 작업을 통해서 서로 혼용되면서 시너지의 극대화 작용을 하는 것에서처럼, 우리네들도 현실과 이상, 현존과 꿈에 관한 명제에서도 이와 같은 생각이 문득 드는 게지요 뭐. 헤헤.. 1977년 제1회 이상문학상을 받은 '서울의 달빛 0장' 소설집을 가만히 펼쳐본다. 정신, 뇌력. 그런 단어들을 생각해 본다. 그 때가 지금하고는 시대 상황과 매개변수가 서로 달랐을지는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아무리 흘렀어도, 일례를 들어 영원한 고전 삼국지가 계속 세인들에 의해 탐독되듯, 인간의 기본적인 뇌력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그 무슨 실체가 있긴 있기나 한 것인가? 뇌력의 암투는 이제 다시 시작 되었고, 온 사방에서 아픈 절규의 소리가 들린다. 일부 꿈의 병졸들은 패퇴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현실의 대세는 승리였다. 드디어 밀리기 시작한 일단의 적 꿈의 주력 부대들은 퇴각하기 시작했다. 회군하는 꿈의 퇴로 추격을 위해 감시용 부군 카메라가 시나리오 내부 공간으로 긴급 투입된다. 대세를 잡은 현존의 주력 군단은 전진을 계속하라! 연락병은 말을 휘몰아 승전보를 타전하라! 긴급 가설된 부군 카메라가 매 순간 긴박한 순간을 모니터링 하는 상황 중 ... 누군가 카메라 속에서 불쑥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호위병을 양 옆에 도열시켜 놓고, 좌우로 있던 산하 장수에게 짐짓 긴 수염을 쓸며 짱은 으름장을 놓기 시작한다. "꿈의 패잔병 추적을 위해 대체 몇 대의 감시 카메라를 회돌려야 하는 거지?" 정적이 흐르고 메부리 코 박 장수는 앞으로 나서 짱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꿈 이상의 추격 카메라는 이제 작동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 허허 지금 저 놈들이 그래도 기를 쓰고 지금 도망치고 있질 않는가? - 저는 보편적인 전술책을 건의 드리는 겁니다. 어차피 시나리오에서 빼내 버리면 간단한 일. 하명하시면 감시용 부군 카메라를 전부 회수토록 조처하겠습니다. - 흠 그렇다면 패잔병의 추격 행로는 자동 폐기 처분되겠군. 그래. 그럼 패잔병 존재 자체도 영원 소멸되는 것인가? 헌데 말야 추격을 당하고 있는 패잔병 저 몽상가 놈들을 이 시나리오 각본에서 영구 폐기시켜 버리면 이야기가 좀 그렇칠 않겠는가? 그 놈이 지금 누군인지도 정체도 노출되지 않았는데, 뿔뿔히 흩어진 몽상군 패잔 잔병 소탕을 위한 추적 감시 카메라를 회수키 위해, 우리 주력 군단이 뿔뿔히 산개한다는 건 좀 곤란한 일이고 말이지!!! -이 넓디 넓은 대지의 유구한 시공간장 속에서 저토록 숱한 생명 개체군들이 진화와 도태를 반목하며 살아내고 있는지 저는 다만 몽롱할 따름입니다. 왜 우린 꿈의 추적 부군 카메라를 돌려야 하는 겁니까? -음 고건 바로 환상! 혼의 광란 때문인게지 뭐. 돌려! 돌리게 계속 ... -짱! 꿈의 1급 기밀문서가 도청되어 방금 전문이 해독되었습니다. -그럼 해독된 문서를 빨리 이리로 가져 오게나! 카메라 Matrix.---------------- 111111 110111 101111 011111 100111 010111 001111 000111 111110 110110 101110 011110 100110 010110 001110 000110 111101 110101 101101 011101 100101 010101 001101 000101 111011 110011 101011 011011 100011 010011 001011 000011 111100 110100 101100 011100 100100 010100 001100 000100 111010 110010 101010 011010 100010 010010 001010 000010 111001 110001 101001 011001 100001 010001 001001 000001 111000 110000 101000 011000 100000 010000 001000 000000 (부군 카메라)------> 河南 마패를 영존케 할 요량으로 명패는 중문 좌상단에 존치시킬 것 수련의들이 묵상 중이었거나 사이비 교도들이 성배잔과 로스구이 뭉치를 내던졌거나, 아니면 원대 복귀했겠거나, 성배에 배양된 치욕균저로 인해 양동작전으로 휘말려 들어 갔거나, 결국 가문 속에로 혼의 전쟁 결의안은 이미 제출되었고, 날아간 개공관저 날개죽지로 물혹찬 손목아지와 능멸찬 혓바닥은 발호하기 시작하였고 짜집기한 물잔은 서로 교환했거늘 ... 그 문제 때문도 아니며, 이 문제 때문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가 이 문제라고 온통 덮어 씌워 오납된 판결문을 파기하라! god는 금잔디 언덕 위로 깃발이 솟구쳐져 있고 그 경계지묘 디딤돌에 회군의 명은 호명당했거늘 뼈 속내 유영한 회한만이 나를 고소하고 있었드라니 ... 필름과 대사를 무척이나 환영하오. 배우 양반! 졸장은 27 피아-차트렛 가문가 57지번 밑을 장악한 지열 법사요. 불기둥이 치솟는 철판과 광선이 작렬하는 벌판대기 그리고 유조선이 항진하는 한 종말지로 게으름이 도래한 걸 무척이나 환영하오. 수케더분한 아궁지가 맵-핵커의 메시지를 통해 샤린가스가 차입치 못하도록 만전의 조치를 취한 기도 외에 그 바지런함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오랫동안 진행된 알 수 없는 행진 덕에 넉살스런 과장의 공수표를 하나 받아 들었소. 이상하게도 반지의 제사장이 떨구워 논 48-140 m/m 초점 잃은 눈매와 god 를 만나려는 약속장소가 든 의심스러운 주머니를 초야에 실족해 버린 그 수상한 잔영 속에 풀려버린 거짓의 태엽을 이젠 다시 감아 놓아야 하지 않겠소? 누구도 정확하게 신생지의 암흑기 속으로 용해되어 사라진 롬의 능욕을 그 단검의 날섬 속에 베이고 어디에 있는지 조차 그 감금의 행방을 모르고 있소. 하지만 그것이 아련히 떨어진 58번가 지하실 한 가운데 존치해 있다는 추측은 확실하오. 사람들 중 끔찍한 괴물이 한밤중에 어슬렁거리거나 눈을 감은 자들이 그들의 뜨락에 다시 착륙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는 예기하고 있었소. 법사 그네들 햇살이 줄줄이 맑아 다시 정화될 때까지 모든 새로운 광선의 유입을 중단하도록 지령을 내렸소. 칼라집 족장은 질서로히 열병식을 참관하고 대지에 새긴 방명록에 그대가 참람했었는지 열람한 직후 그대에게 새로운 지령을 내릴 것이요. 지금 당장 그 세부 주소지를 수배해 주시오! 57번가에서 58번가로 흐르는 그 하수구 지도는 반대편 문 좌측 파이프 위에 재활되어 놓여 있을게오. --------------------/// 음 해독서를 보니 57번가와 58번가를 뒤적여야 겠군. 치..........직 치직 치지직 -부군 카메라가 또 왜 저러나? -부르셨삽니까? -저 카메라 또 왜 저래? 치..........직 치직 치지직 -모든 동작이나 어떤 사고거나 그 모든 장면은 전혀 독립적으로 파생되지는 않는거 잘 아시죠? 그 즉슨 무엇이든 유추해 낼 수 있는 지나가 버린 역사의 침묵과 무엇이든 뜷어 내칠 수 있는 미래의 개연성이 서로 맞받아 치는 모순의 치기 어린 기슭이 바로 이 지금 순간이라 말할 수 있는거 말입니다. 가령 어떤 싸우는 장면을 가정해 본다면 '참나무 숲 밑 그늘진 정자나무에서 서로 노려보는 두 사나이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말이죠 그 동공에 기출된 참나무 아래서 ...로 되비추긴 하였지만 그 피사체에 어린 의미적 변화란 얼마나 많은 변증법적 요설이 벌어 질 수 있는가 말이죠. 그 씬 속에 작은 풀벌레가 참나무를 갉아 먹고 있고, 좀 더 큰 벌레가 노려보고 있단 씬이며, 갑자기 강풍이 불어 나뭇가지를 꺽어 버렸단 시선이며, 아니라면 그 정자나무 그늘 아래 별따로 화평스럽게 장기를 둬 점심밥을 사줘야 하는 어떤 촌로의 불편한 심기 등등 ... 여러 다음 순간의 연속성 하에 정경을 포착할 수도 있단 이야기인데요. 시공간적인 포착점이란 기실 무한대로 해체할 수도 또 조합할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포착된 어느 한 정경'을 시간의 연속점이라 가정할 때, 그 시선을 두기 이전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바꾼 연후의 연속성에 대한 연결 고리에 대한 인과적 의미가 없다면 그 정경 씬이란 손괴 당하고 마는 법인 게지요. 그 자체가 공중에 그냥 뜬 구름처럼 허구이며 거짓말인 셈이죠. 우리는 어떤 시선을 바라다 볼 때 실제적 현실의 연속적 유기성과 아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은 우린 상식선에서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순간은 그 자체로써 존재할 수도 있다!" 란 가정을 타파하는 가장 기본적인 해법은 그 가정 속에 농축되어 있는 '다음 시선'과의 관계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 다음 시선'은 어떤 씬으로 처리해야 하는가 그럼? -네 그 다음 씬이 활동 사진첩의 한 필름으로 어떤 인과 요소를 포괄적으로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이와 같은 동작 원인자에 대한 검증적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분명히 그 동작 자체로 인한 함수적 오 작동범위가 독립적으로 존재치는 않는 법이니까요. -결국 하나의 뭉치적 동작으로의 연결적 요소에 의하여서야만이 실체적 진실은 움직일 수가 있단 말이로군 그래 -이 이야기는 꿈에서도 실제 현실의 시간적 연속성에 대한 검증법에서도 아주 적절히 적용되는 중요한 테제이자 전제조건인 셈인 게지요 -머리가 아퍼오네. 이만 고만허세. 그냥 혼자 있고 싶으이! 날 그냥 가만 자게 내버려둠세. ------------------------------------------------------------------------------///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 본문 중 일부인용 시작.) 인간은 과연 행복할 자격이 있는가?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생선시장의 개처럼 꼬리를 뒷다리 사이에 감아놓고 눈을 슬프게 치켜뜨고 다니다가, 형편이 좀 나아지면 발정난 개들처럼
닥치는 대로 붙을 자리만 찾아 다닌다. 사람들이 결국 바라는 건 필요 이상의 음식,
필요 이상의 교미. 섹스의 가수요. 부자집 며느리 여름철에 연탄 사모으듯,
남의 아내건 남의 아내가 될 여자건 닥치는 대로 붙는다. 남의 사랑을 위한 빈 자리를 남겨 두지 않는다.
물처럼, 공기처럼, 여력만 있으면 빈 자리를 메우려 든다.
인간은 자연인가? 메우고 썩힌다. 썩은 사타구니에서 쏟아지는 썩은 감정. 자리를 찾지못한 자들의 증오.
평화가 만든 여유. 여유가 만든 가수요. 가수요가 만든 부패. 부패가 만드는 증오. 부패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남은 일은 증오의 누적, 그리하여 전쟁. 전쟁은 필연적이다. 전쟁으로 모두 빼앗기고 다시 시작. 인간은 행복할 자격이 있는가? 그게 아녜요. 형편이 나아져서가 아녜요. 아내가 말한다.
그럼 뭐야. 그렇군, 형편이 더 나빠져서군.돈 때문이니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건 돈이니까.
아녜요. 슬픔 때문예요. 종말에 대한 슬픔이 섹스를 만든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슬픔이 우리들의 섹스를 만들어요. 사람들은 슬퍼하고 있어요.
당신이 바라고 있는 그 전쟁 때문예요.
정부에서도 신문에서도 전쟁에 대비하라고 야단들이잖아요? 내가 애기하는 건 그런 전쟁이 아냐. 전쟁은 다 마찬가지예요.
전쟁이 나면 이번엔 아무데도 도망갈 데가 없다는 걸 어린애들까지도 알고 있어요. (...)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건 종말에 대한 불안이예요. (...) 그래요. 우리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모든건 슬픔예요. 그 슬픔은 특히 남자들을 사로잡고 있어요.
그 슬픔이 남자들의 윤리를 허물어뜨려요. 윤리란 미래적인거죠. 우리에겐 미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허물어진 남자들이 여자를 지배하고 있구요. 그래서 모두가 슬픈 거예요. 악귀 붙은 년.
악귀붙은 가련한 년. 네 주둥아리를 빌어서 아는체 떠들고 있는 도깨비는 어떤 놈이냐?
방송국의 유치한 대사로만 꽉 들어찬 네 대가리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왜 화제를 나한테 돌리세요? 옳아, 이제보니 그동안 쭈욱 날 우습게 보고 있었군요?
가장 위해주는 체 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면서, 그래 우습게 보고 있었다.
그런줄 알고, 네 몸에 가련한 놈 도깨비가 붙은 줄 알아보고 우습게 보고 있었다.
누구냐? 네 입을 빌어서 떠들고 있는 놈. 그따위 말로 널 유혹했단 말이지?
그 따위 말로 내 자리를 빼았았단 말이지? 여자의 자물쇠는 그따위 말로 열린단 말이지?
열리자마자 문안으로 정액을 쏟아넣어 그 말을 네 자궁 속에 단단히 풀칠해 놓았단 말이지?
우린 이제 모두 죽게 될 테니까, 하며 슬픈 얼굴을 짓고 사내들이 다가오면 네 문은 스스로 열린단 말이지?
누구냐? 이름을 대란말야. 네 주둥아리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그 놈.
아직도 네 자궁 속에서 살아서 까불대고 있는 놈. 개 같은 욕망에 시대의 구실을 붙여 널 유혹한 놈.
이름을 대. 모두 이름을 대. 몇 놈이야? 모두 이름을 대. 개시끼야, 가련한건 네 놈이야. 이제 싫증 났으면 그냥 싫다고 해.
내가 언제 처녀랬어? 내가 언제 결혼해 달라구 했어? 결혼하자구 찾아다닌건 네 놈이잖아! 그냥 나가 달래도 얼마든지 나갈 수 있어. 그래, 미쳤는지도 모른다.
네 자궁 속에 붙어서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는 도깨비한테 물려서 나도 가련한 모양이다. 어서 이름만 대.
악귀는 제 이름을 부르면 도망치는 거다. 널 쫓아내고 싫어서가 아니다. 네 몸 속의 도깨비를 쫓아내고 싶어서다.
왜 감추느냐. 왜 도깨비를 감싸고 내놓지 않느냐. 부끄러워서냐.
작은 부끄러움을 지키려고 큰 사랑을 거절하는거냐. 널 마음대로 휘두르고있는 건
네 몸에 붙은 도깨비야. 도깨비가 지배하고 있는 널 내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 토해 버려라.
도깨비를 토해버려. 네 자궁 속의 도깨비를 토해버려.
널 사랑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개시끼야. 진짜로 가련한 놈은 네놈이야. 없는 도깨비를 억지로 만들어서 날 쫓아내려구. 좋아 나갈께 ......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 본문 중 일부인용 끝.) ///-----------------------------------------------------------------------------. -사랑을 서운케 하자니, 존재 란 '정신'이 울고, 현실을 경시하자니
현존이라 불리는 '물질'이 징징대는데, 자기야 이럴 땐 나 어떻해야지 돼? 아침상을 물리고 별은 나직한 톤으로 내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 그 말이 말등을 올라 탔는진 몰라도 오후 달리는 버스 차장녘으로 화들짝 치기 어린 표정지으며 가로수 곁을 스쳐 지난다. 정신과 물질. 사랑과 현존. 사막에 강. 광야에 길. 오랫만에 들른 충무로 백작 호프집은 오후의 나른함 그대로 손님이 한적하고, 친구는 푸석거리며 시장을 보러간다. 나는 커피를 가지고 오는 일본어를 대학에서 전공한다는 여급에게 격의없는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일본어로 '당신은 정말 미인이군요.' 란 말을 어떻게 표현하지? -아 네. 아마 잘은 몰라도 '아나따와 혼또니 비이징데스' 가 아닐 듯 싶으네요. 아나따와 혼또니 ! /// 아나따와 혼또니 .昌.大. 상! 요즘 과연 어떠하신가 평안하신가!!! 나는 나으 정신세계에게 낯설은 이름으로 나즈막히 호명한다. 별이 내게 나직히 캐묻듯 ...... 이따끔 간헐적으로 혼탁해져 오는 昌大 상으 뒷통수를, 자의식이란 녀석. 손바닥을 쭉 펴내선 툭 두둘기며 그 낯선 개아에게 재차 캐묻는다. (-어이 昌大 상! 요즘 조금 괜찮아지셨는가?) 서로으 관계 속에서 너와 나 그 사이에 존재치 아니하고, 그 자신만으 껍질 속에서만 머물던 너 昌大 상이여! 네 죄는 네가 알렷다! 그 의미를 다시 풀어 보자면, 마치 온 뼈 살점을 휘감싸고 도는 '나쁜 피' 라 표현하기 보단, 살아온 길. 그 몸뚱이를 칭칭 휘감싸는 저 싸늘한 겨울 밤공기와 같은 게, 바로 나로 하여금 나를 까닭없이 시달리게 만들던 강박관념은 혹여 아니었을런지... 결국 사랑이 순간 달겨 들었지만도, 너란 고귀한 존재에게마저, 그 아집으 틀 상자 속에 결박시켜 버렸었고, 일방적으로 나포한 시행으 착오, 아니면 한갖 대상물로 예속시키려 했던, 그러면서 자만스례 내 자신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널 사랑했었 노라! 라고. 허허 흐흐. 누구도 인정치 못할 포르투칼 언어같은 ... 이단아으 방언을 혓바닥 내밀어 방뇨시킨 죄! 昌大 상. 네 놈이 알기나 알고 지었던 중죄였드냐? 개아(個我)는 내 자신 스스로에게 그렇게 조소하듯, 엄중한 질책을 툭하니 내던진다. 존재! 여타 존재가 존재함으로 인해 변질된, 존재으 부정. 그로 기인된 강박관념. 존재란 과연 무엇일까? 존재란 결국 그 진실을 인식하는 나와 인식되어지는 네가 서로 겸허히 쳐다 볼 때 비로써 개시되는 영역이며, 널 기초로 하여 그 기소점에서부터 차근차근히 쌓아 올려가는 빨간 블록담은 혹여 아니었을런지요. 나는 널 사랑했다! 그런 상황을 설정하고... 그 사실 자체는 떠벌였지만도 기실 그와 정 반대로 그 설정으 범위 안에서 자기변명에만 급급한 나머지, 그래도 아집으 관성은 교만스럽게 자책함으로 극렬 항거한다. 昌大 상! 넌 왜 그리도 운명이 각박한 것이더냐! 라고 경멸하고 있는데에도 불구하고 ...... 운명! 그 두 단어를 툭툭 건들여 본다. 반응없다. 조용하다. 운명! 제발 말 좀 하거래이. 응? 응?! 그래도 무뚝뚝. 허나 그 뚝뚝함을 탓할 자격이 과연 내게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으 취득을 원한다면서 자신으 틀도 아닌 너란 상대으 틀 속에 나를 가둬 보려는 눈물어린 노력은 과연 얼마나 했느냐고, 운명은 묵언으로 날 항고 하려는 듯, 도무지 말이 없다. 어찌 그런 가련한 놈이 운명을 탓하랴 만은 그럼에도 가장 치명적인 위협은 숙명. 남이 쉽게 주절이는 숙명. 그 분신을 그대로 믿어 버리는 일! 그 배아림으로 말미암아 우린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구속했던 거며, 새로운 전환에 관한 시도를 극렬히 방해해 왔던 것인가. 뼈 속까지 시뻘겋게 물든 그 불신과 의심. 그리고 집착 밖에 아무것도 인식치 못하였던 지난날 나으 못난 청춘이여. 시행착오여. 이제 굿바이! 사요나라. 한갖 제 혼자만 인정할 수 있을 넋두리 위조지폐로 너으 그 순수한 사랑을 유포시키려 한 놈. 昌大 상! 너으 실체란 어느날 도저히 감당못할 중압감으로 희생도, 은총도 모르면서 또한 만남의 의미도, 현존의 질서도 모르면서 그 스스로 아집으 중량에 못이겨 제 스스로 제 자신을 깔고뭉갠 처량맞은 들쥐 시끼처럼,오오 가련한 운명 이여! 그게 바로 昌大 상 너으 올바른 정체가 아니었던가 말이시.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중가면을 분현코 벗어 버려야만 할 때! 지워벌 지워벌! 하면서 진정한 참회로 나를 개종해야 할 때! 나는 이제 절망이라 불리우는 저 대지의 토양에 새로운 전환이란 명사으 씨앗을 흩뿌리고, 반드시 움터 내야만 하리! 바로 이 순간. 무릎을 겸허히 끓고 신에게 간절히 은총을 구해본다. 허나 은총을 구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자신으 의지대로 너를 진정 존중하는, 결국 은총이란 몸소 그 사랑을 지향하는 임재 안에서 있으려 할 동안만 개입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은총은 나으 객관적 대상은 결코 될 순 없는 일. 이젠 그 객관적인 관조가 아닌, 제 스스로 일어서는 오뚝이 처럼 제 스스로 스프링 요동쳐오르듯, 앞으로 앞으로만 튕겨 나아갈 때!, 나 자신 뿐만이 아닌 '너와 나' 그 신선한 토양 위로으 새로운 전환 그 뿌릴 내려야 할 때!, 그런 모양새로 오거니는 여로 이기를 ...... 그런 염원이, 겨울 길거리에 흩뿌려진 잎사귀들처럼 그런 정신이 뇌깔린 오솔길이길 간절히, 간절히 희구하면서 ...
부랑아에 관한 몽상 해가 서서히 뜨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참을 그렇게 물끄럼히 하늘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문득 허탈한 웃음을 입가에 짓게 되었습니다. -이게 다 뭐야. 지금 저는 너무 기가 빠져 모든게 정말이지 다 싫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르게 멍한 진공관 속에 제 존재가 함몰된 느낌 뿐입니다. 훌훌 옷을 털고는 목발을 양어깨에 걸칩니다 그리고 저는 길을 나섭니다. 한 걸음 두 걸음 홀로 걷는다는 아픔도 이젠 아련만한 추억일 따름입니다. 그렇게 ... /// 그렇게 ... /// 그렇게 저는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흩날려 길바닥에 나뒹구는 잎사귀들 처럼, 저 저잣거리로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한 잎! 두 잎! 싸늘한 시베리아 동토에서 사시로움같은 그런 매서운 북서풍이 부는군요. 원래 솜이불처럼 포근한 바람 풍.字.는 남동쪽에서 불어온다하죠 아마? 저 표표한 길거리에서 ... 지하철 입구 계단에서 ... 육교 가스등불 아래서 ... 명동 로얄호텔 옆 보도블록에서 ... 부초처럼 떠다니는 저 가련만한 존재 부정으 허눌한 몸짓 몸짓들! 뒤뚱이며 온 거리 회돌아, 저는, 제가 원래 살던 그 자리로 회군하는 '어떤 귀로' 길 입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떠나왔었던 원래으 자리인 것이며, 평화와 보물 같은 '자아으 신화' 그 별이를 찾아 떠나왔던 그 자리인 것이기도 합니다. 그곳은 예전 잠시 눈을 붙히며 단잠 들었었던 곳이기도 하구요, 성물 보관소가 존재 했었음직도 한 자리인 겁니다. 커다란 무화과 나무 잎사귀 너울거렸던 자리 이기도 하구요. 그곳으로 저는 다시 걸어갑니다. 기어갑니다. 쩔뚝이며 돌아가도록 회군을 命합니다! 다리를 심하게 절룩이는군요. 씻지도 아니하구선, 듬성무성한 저 턱수염은 더부룩하구요. 에구 눈가엔 눈꼽이 더덕더덕 붙었군요. 눈빛마저 흐릿하구요.에또 저 장대처럼 뻗친 머리카락은 산발한 채, 아이쿠-꾸 입가 근저에서 퍼지는 십년도 넘게 썩었을 저 생선 비린내는 어떻구요? 그래도 가방 하나는 크다마한 걸로 척하니, 걸치기는 걸쳤습니다요. 저는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순수한 별에게서 그렇게 떠나,거오히 선 저 거리의 가스등 불빛 아래로 그렇게 멀어져 갔습니다. 이즈려져 갔어요. 해맑은 햇살에 짓눌려 명멸한 어스름찬 화성으 별빛처럼 ... 혼돈과 갈등은 저로 하여금 거리으 꼭지점 대지에, 한 평 자리마저 제대로 안겨주지 못하구선, 버텨내지 못할 만큼으 광포한 방황에 관한 갈증을 안겨다 주었어요. 어쩌면 자유라 표현할 수도 있을,방황? 아니 방랑이라 불러 볼까요? 그래도 갈망이라 이르기엔 너무 주름진 이맛살, 눈치껏 종종걸음 치는 중년 내시으 걸음새, 거리의 부랑아의 처진 어깨, 거지새끼 능멸찬 저 풀기 하나없는 허허로운 웃음소리, 너른 바닷물에 명멸하는 파도 물결처럼, 군상들 부초처럼 떠다니는 길거리에 부나비같은 그런 팔랑이는 .날.개.짓. 같은 그런 것 하나, 훈장처럼 벙어리 냉가슴에 달아 줬는진 잘은 모르겠습니다요만은그려. 음허허-헛! 여튼 이저러지도 아니할 빙판길 위에서 제가 난장질을, 난장질을 좀 추기는 췄던 것 같습니다그려. 저는 거저 보통 인간 개체군으로, 옹망똘망한 평인의 자세를 견지하며 살고 싶습니다! 허나 혼돈을 부채질하는 원죄으 늪 ! 그 회오리 요동치는 엄청난 업에 짓눌려 허우적이는 저 심연으 굴레로 인해, 제 자신과으 관계는 저로 하여금 그렇게 호락호락 원만히 생으 물결이 구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암울한 시그널이 계속 입력되어져 오는군요. 그건 저 머언 아프리카 땅, 수 천킬로 사하라 사막을 질주하여, 가로질러 온 레반터이 아닌 것입니다. 부나비가 건설한 신 시가지 그 시청 관저에서 요동치는 시로코. 시로코 같은 바람 풍.字.는 더-더욱 아닌 것입니다. 그건 바로 제가 겸허히 받아 감수할 운명입니다. 그런 연결고리 사슬때문일지라도 그대가 그토록 간절히 소원하는 그대의 간절한 '자아의 신화'를 더 이상 지체 시키거나, 오살진 그대 생활을 귀찮게 하거나, 곁에서 치쩍치쩍대며 방해하고픈 맘은 추호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 ..... ... .. ....... ...... .... ........///
말기암 판정을 받은 환우에 관한 몽상 (...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하시는 선현으 명언이 문득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길이 아니라는 걸 뻔히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그 무슨 미련때문에 가시밭 길을 계속 걸어가는 우매한 사람들을 간혹 우린 목도할 수 있습니다. 거니는 생으 도정 앞길에서, 뻔히 아니될 것임을 뻔히 그 스스로 잘 알면서도 그 결말이 자기 마음 속에서부터 진즉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노력이나 공을 기우리면 어떻게 되지 아니할까? 라는 공연한 기대심리로 미련떨며 오도방정을 떨며 집착을 갖는 꼴을 저는 말하고저 하는 겁니다. 사람이 살면서 그런 경우에 맞닥뜨렸을 때엔 누구나가 다 공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단호히 진로를 결정해야 할 사안이 존재함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겠죠. 그 즉슨, 길이 아닌 길을 걸어가뫼, 장애물이 되는 제반 요소들을 정말 노력하고 공을 기우리면서 제거하고 결국 될 일로 만들고야 말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는 경우와 또 다른 한편으로 아무리 노력을 기울이고 공들여 보아도 결국 이루워지지 아니할 사안을 가지고 미련과 집착 떠는 .착.각.! 같은 의미으 명사를 말입니다. 그 착각으로 인해 우린 또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물질을 날려 버리고, 또 짧다면 짧을 인생으 소중한 시간들과 정력들을 소진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할 기회마저 송두리채 탕진해 버리는 우매함을 저지르는 걸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쉬운 일례로 우리가 어떤 암에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일단 치명적인 회복불능으 암 판정을 받은 환자를 한 번 살펴 보기로 하죠. 그 사람은 소설으 다섯가지 과정에서처럼 대략 다섯가지 절차를 걸쳐 정신적인 갈등을 껵게 되는 것이죠. 일단 첫번째로는 말기암 판정을 받은 환자가 나타내는 즉각적인 반응은 바로 부정입니다. 현실에 대한 강력한 부정!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그럴리가 만무해 ... 그는 여기저기 병원문턱을 넘어 보기도 하고 정밀 재진단도 받아보기도 하며, 믿어지지 않은 자신으 불행에 관해 치를 떨면서 제 허벅지 살을 꼬집아도 비틀기도 하는 것이죠. 그 다음 단계가 바로 분노입니다. 내가 왜? 저 새끼는 멀쩡한데 왜 내가 이런 몹쓸 병에 진저리나는 세상! 세상을 향해 공병을 집어 내던지고, 길가에 깡통을 발로 차며 자기 머리채를 뜯어잡고,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 멱살을 부여잡고 통분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그 환자으 마음 속에는 어느새 찾아오는 게 하나 있죠. 공허. 소리를 지르고 온 몸에 분노와 화가 치밀어 올라 사시나무 부르르 떨듯 하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그런 아무도 없는 듯한 적막감. 공허감이 뒤따르겠죠. 공허감이 떠밀려오면 그 환자는 말수가 점점 적어집니다. 힘이 축 쳐지는 게지요. 어깨가 내려가고 걸음걸이가 패기가 없어집니다. 그 다음 단계가 바로 허무! 그런 공허감은 머지않아 허무함이란 모습으로 그 스스로를 변이시켜 버리는 겁니다. 허무한 사람은 모든 만사가 다 귀찮고, 바라다 보는 세상사 그 모두가 다 싫어지는 거지요. 거저 멍하니 하늘만 치어다 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이 허무함이라는 네번째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수긍이라하는, 수용이라는 마지막 단계를 밟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 그게 바로 나으 운명이야. 받아들이자. 그러면서 그는 자신으 삶을 서서히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일련으 다섯가지 정신적인 갈등을 거치는 제각으 과정 속에서도 환자는 그 스스로으 자신과 아마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것은 당연지사겠죠? 살고싶다! 나는 살고싶어! 결코 난 암에 지기 싫어! 라면서 허나 그 때가 이르뫼 죽음으 어두운 그림자는 서서히 그 말기암 환우분에게 다가 옵니다. 그러나 이미 그 환자는 벌써 주변으 모든 것들을 차곡히 다 정리하구선 필요에 따라선 여타 제 종교에 그 영혼을 의뢰해 놓은 상태에 있을테죠. 눈을 서서히 감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그는 소풍을 떠나 갑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사람으 생명은 그렇게 이즈려져 가는 게 아닐까요? 여기서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제일 중요한 관건은 그게 바로 이 글을 쓴 직접적인 동기이기도 하겠지만 대개 암 판정 이후에 껵게 되는 이런 일련으 5가지 정신적인 과정들을 우리는 살면서 도처에 껶게 되는 건데요. 사안에 따라서 대개는 이런 류으 일련으 과정을 밟아가면서 대개 첫번째이거나, 두번째 단계에 이를 때에 마음은 더 이상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구선 계속 머물거나 미련을 갖거나 그래서 괴로워 하게 되는 고뇌가 비일비재 한 것이죠. 사람들은 처음 그 자기 스스로에 의해 규정된 것이라든지 타인에 의한 존재부정이든지 간에 강한 자기 부정과 격렬한 싸움박질을 하고난 뒤, 세상이라든지, 자기 스스로에게, 아니면 그 주변을 향해 분노내지는 화를 내게 되는 것인데요. 왜 하필이면 내가! 왜 내가 아파야 하냐고 왜 하늘은 날 버려야 하느냐고 왜 나는 이렇게 가난해야 하냐고 왜? 난 이렇게 키가 작고 못났고 일이 않되고 실패하고 기타 등등 Why!!!!Why!Why!Why!Why! 왜 악랄한 저 놈은 사지 멀쩡히 거리를 활보하는데 난 이렇게 몹쓸 병에 걸렸느냐고 ... 세상을 향해/ 자기 자신을 향해/ 타인을 향해/ 애인을 향해/ 가족을 향해/ 주점주점거리다가 정작 공허와 허무 그리고 가장 생으 중차대한 덕목인 수용과 정리! 인생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진짜 허무하게 이즈려져 버리는 경우가 태반인거죠. 제가 논하려는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네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할 것 같은 그런 불길한 예감이 느껴지면 그런 갈등이란 기실 오랜 세월을 섞어 살다가 세월이 많이 흘러 살다보면 자연스례 느끼게 되는 .권.태. 라고 하는 용어완 에또 전혀 차원이 다른 얘기이지만도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런 불우한 예감을 갖게 된다 라거나 느낌이거나 잦은 충돌이 있게 되는 경우에는 우리는 미련을 가질 이유가 하등 없는 것이죠. 그렇다고 아무 지랄이나 마구 떨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차분히 실수않으면서 우리는 그 갈등항목들을 정시하면서 서서히 마음 속을 정리하거나 아니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이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안돼! 라는 끝까지 밀고 나가겠느냐 라는 단호한 으지 내지는 결의. 그 두 가지 갈림길에서 진중히 그리고 엄숙히 마음으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일테죠. 노력이나 공을 들여 그 문제가 해소가 될 것이냐 아니면 아무리 애써봐도 결국 결합되지 아니할, 축복받지 못할 사이 일건지에 관해 우린 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써 올바른 지혜의 정도가 아닐까 싶어 지는군요.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