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9일 월요일

고 최진실 톱탤런트 동생 최진영 씨 연이은 자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가족 자살하면 더 조심해야 하는데…`

전문가들의 안타까운 조언

[중앙일보- Joins.com]

◇ 정신 우울증 심하면 꼭 연락하세요
정신건강상담전화 1577-0199
보건복지콜센터 '희망의 전화' 국번없이 129


. 한국자살예방협회 사이버 상담실
http://www.counselling.or.kr

 

. " 그 집안에 무슨 저주가 걸린 것 같다 ! " 길가를 스치며 옆사람에게

건네는 어느 행인의 말을 들어보면, 고 최진영 씨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고 최진실 씨는 정말 대한민국의 톱 텔런트 였으며, 두 자녀를 남기고 재작년

10월 초에 자살했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만에 누나를 따라 목숨을 끊은

탤런트이자 가수 였던 최진영 씨.

 

                   재작년 10월 누나의 갑작스런 자살에 오열하던 동생이자 텔런트인 최진영 씨

 

전문가들은 29일 오후 전해진 이 비극적인 소식에 대해 "한 명의 자살이 얼마나 주변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자살한 사람이 있는 가족은 정신 건강을 특별히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신과 전문의는 최진영의 자살이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만큼 누나 최진실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이 컸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윤대현 홍보이사는 "한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경우, 친밀한 관계에 있던 6명에겐 굉장히 심한 정신적 충격이 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그 역시 누나의 자살로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겪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때문에 더욱 우울증 등 정신 건강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는 것이다.

윤 이사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주변의 지인이 자살한 사람의 경우에는 더더욱 정신 건강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징후가 나타날 경우엔 지역 보건소의 정신보건센터나 정신과 전문의를 꼭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 구성원이 잇달아 자살하는 것은 이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당대의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1961년 사망)의 집안이 대표적이다. 그의 집안은 아버지와 형제, 누이가 모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 가족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엔 그의 손녀 마고 헤밍웨이까지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우리 가문은 알코올 중독과 자살을 유전적으로 물려 받은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도 같은 지적을 했다. 가족 중 자살한 사람이 있으면 심리적으로 자살 충동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인들도 종종 자살 충동을 느끼곤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는 이유는 심리적 장벽 때문"이라며 "친한 이의 자살을 경험하게 되면, 이런 심리적 장벽이 크게 낮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진영이 받았을 스트레스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전문적 관리가 필요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온 국민에게 알려진 누나의 죽음으로 아마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며 "직업적 특성상 일반 사람들과 깊은 인간 관계를 맺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 최진실의 사망 이후 우려됐던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걱정도 제기됐다. 곽 교수는 "스타에 대한 환상이 큰 사춘기 청소년의 경우, 연예인 자살로 인해 생명을 경시하는 마음을 갖게 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베르테르 효과 =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 해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따와 이름을 붙였다. 소설 속 주인공 베르테르는 남의 약혼녀를 사랑하다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데 소설 출간 이후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살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



 

2년 전 당시 고 최진실 씨 사망 당시 썼던 글을 다시 올려 봅니다.

 

 

국민의 연인 고 "최진실" 님 자살, 생이 너무 슬프다.

슬프고 또 슬프다.
한국사람이라면 그녀의 옹골차고 당찬 연기를 ...
그리고 감칠맛 나는 그녀의 드라마, 영화를 봤음직 하다.

갑자기 세상을 뜬 그녀 한 마디로 망연자실하다.

그녀는 만인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스타였지만
또 한편으론 개인적으로 이혼했고 그 이후 무척 외로워 하며 괴로워 했다 전한다.

나 역시 고 최진실 씨의 오랜 팬이다.

그녀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2008년 10월 2일
하루 종일 마치 이것이 끔이길 바랬다.
하늘이 무너지는 비련을 느꼈다.

너무 허망하고 가련타~! 멀리서나마 진정 그녀가 다시
그 불행한 이혼의 아픔을 딛고 굳굳히 일어서는 모습을 보길 바랬었는데,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이면 이렇게 글 쓸 힘도 없는 것인가 보다 ...

오늘은 조용히 쉬고싶다. 그리고 하늘로 간 호수
우리들의 요정 최진실 씨 부2디
명복을 빌어 봅니다.

안녕.........               2008.10.02





악성루머의 블랙홀로 빠져든 시대의 요정 ... 고 최진실 씨 영면하다.


                    
                    
                      



                      



한강    /    박 노 해

 

 

       한강이 가슴을 연다

 

      여윈 어미의 가슴처럼

 

    주름진 강심(江心)이 소리없이 열려 흐른다


      얼어붙은 겨울 속으로
숨죽이며 흐느낌으로 흐르던 

   눈물  강물

      봄은 멀은데

      멍든 가슴, 지치인 노동에

      탄식하며 탄식하며 쓰러져

      몰아치는 찬 바람에

      다시 아귀찬 이를 물며 일어서 흐르는

      사랑이여 모진 생명이여

      강물은 흐르고


      더러움과 오욕에 뒤섞여

 

      거칠게 한강은 흐르고


      살얼음을 뒤척이며

      어두운 겨울 속으로

      봄을 부르며


      봄을 부르며

      소리없이 열려 흐르는

      눈물이여 강물이여
 
                        






 거대한 오해
 악성 루머...
 그 블랙홀의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간
 고 최진실 씨~!

 그 회오리 밖으로 빠져 나올 수가 없었고
 탈출은 그 자신 스스로는 도저히 불가능 했었기에,

 그 스스로의 애달픈 운명의 덫에 물려
 아까운 생의 끈을
 그 스스로 놔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참연한 슬픔의 심연 끝자락.

 이제 아름답던 미소는
 한 줌의 재로 화해져 버리고,
 이렇게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어느 산자락 녘에
 영원히 묻혀 버렸다.

 그녀가 시대에 남기고 간
 모든 언행과 연기의 화두들이 너무도 눈에 선한데
 다시는 볼 수 없을 그녀는
 이승의 저 너머로 떠나가 버리고
 이제 그녀는
 만인의 연인으로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각인되어져 버렸다.

 최소한 동시대를 산
 대한민국 남녀노소, 그 모든 사람의 가슴들 속에
 박노해 시인의 '한강' 싯귀에 나오는
 그 눈물방울이 이슬방울 되어져
 우리네 가슴의 멍에 속으로 굽이쳐 흐른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양수리 어느 산녘에  
 잠든 우리들의 영원한 배우
 고 최진실 씨 ~!

 그녀는 이름 그대로 진실과 구라가
 아수라장 판 되어버린 질곡한 이승을 홀연히 떨쳐 내버리고
 영원한 진실을 절규하며
 우리들에게
 짧고 굵게 살다 간
 그 삶의 단층단층의 파편 조각들을
 우리들 가슴에 켜켜히 남겨 쌓아 두고서
 한 줄기 강바람처럼 홀연히 저승 저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녀가 잠든 양수리 근방엔
 오천년 한반도 역사에
 또 전 세계에 그 어디에도 없을 굴곡진
 역사와 시대 유물 단층들이 켜켜히 널려져 있는
 하남 땅이 있다.  

 그녀 역시 우리들 가슴 속에 너무나 깊은 슬픔의 단층들을 켜켜히 남겨두고서
 우리들 곁을 ... 또 그녀가 가장 아꼈던 두 자녀의 추억 속에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져 가 버렸다.
 가슴 속에 횡하게 꽃혀 버리는
 이 아리움은 대체 무엇인가?

  이번 그녀의 자살로 마감한 주검을 통해
 행복이란 결코 부귀와 돈 명예에 있음이 아님을
 새삼 절감케 한다.

 유명해진다는 거 별로란 생각도 인다.

 멋진 여성 커리어 우먼~!
 어떻게 보면 그녀는 멋진 생을 살다 간 성공인이었다.
 줌마렐라~!

 그녀가 생전에 누린
 두, 세가지 달란트  ...

 수제비로 매 끼니를 때운
 어릴적 빈한한 가난의 질곡을 지나
 큰 부도 일궈 냈으며,
 온 국민의 사랑도 받는 멋진 배우의 명예도
 또한 그윽한 동양미를 지닌 순수한 아름다움의 달런트도
 하늘에게서 부여 받았건만

 세상에서 가장 소박히 짓는 화사한 미소와
 톡톡 튀는 화술도 구사할 줄 아는 재능도 부여받았건만 ...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다시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세인의 주목을 받는
 그 세인들의 시선의 등살에 떠밀려
 저 거친 루머의 블랙홀 회오리 속에로
 그 스스로가 함몰되어
 빠져 들어가, 대중들 곁을 벗어난 공간 속에선
 언제나 그녀는 외롭고 고독하며
 왕따이고 슬펐었었다.

 차라리 인기 연예인이 아니었더라면
 천수를 누렸을 것을 ...
 아쉬운 맘이 드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그녀는 언제나
 대중들의 관심과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허울 좋은 인기의 무시무시한 블랙홀 영향력 한계치 경계선 상을

줄타기 하는
 마치 살얼음 판을 걷는듯한 어릿광대의 삶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땐 그 스스로 허물어지는 그래서
 제 맘껏 한풀이 하듯 이스러지고 또 흐뜨려져 버리고도 싶었었겠지 ...

 허나 그녀는 대중들의 톱스타였기에
 언제나 그 혼자만의 공간 주로 집에 머물렀다 전한다.

 뼈아픈 이혼을 한 뒤 언제나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그 자신과 싸워온 그녀.

 너무 가련하고 불쌍타~!

 차라리 이름 모를 소녀 였더라면 ... 그렇게
 이름모를 악성루머로 인해 희생당하지 않았을 것을 ...
 그러기에 더욱 더 가련하고
 사심 아리다.

 스타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구나 란
 생각을 다시 뇌아리며 ...
 영원히 잠든 그녀의 명복을 다시끔 빌어본다.

 부디
 편히 잠드시라 ...           /    2008.10.05



 

. 어느 비극적 사건 전개의 나비효과


어느날 문득 자신의 사유지에 관한 처리 보상금에 불만을 품은

어느 성난 노인 한 명이 라이터를 들고 남대문 담장을 올라갔다.


조금 후 국보1호 숭례문은 화마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서까래가 주저앉고 모든 것이 잿더미로 화해 버렸다.

전 국토가 초토화가 되어버린 6.26 전란에도 부서지지 않았던
숭례문은 그렇게 어느 노인의 개인적인 분노로 인해 이스러져 갔다.

 



그 얼마 후 그 사건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어느 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및 광우병에 대한 우려로

숭례문에서 광화문 광장에 이르기까지
행길에는 MB 정권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이
하물거리기 시작하였다.

하늘에서 본 100만개의 촛불 시위는 한마디로 거대한 화마 줄기였다.

 



많은 국민들이 MB 정권에 대한 무저항 항변의 상징으로 손에 손에는
분노의 촛불이 들려져 있었다.

몇달 동안 광화문 네거리에서,
전장과도 같던, 격렬히 타올랐던

분노의 화마줄기는, 세월이 점차 지나감에 따라 서서히 사그라 들었다.

 

 

그 와중에 개그우먼 정선희 씨는 자신의 라디오 방송 도중에

촛불 시위에 관해서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거대한 분노의 블랙홀 소용돌이는

정선희 씨 개인을 강타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녀와 결혼하여 화장품 사업으로

재 도약을 꿈구던 그녀의 남편이자 탤런트 였던

고 안재환 씨의 사업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며 그의 사업은 악화되었다.

결국 고 안재환 씨는 사업 부진으로 인한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그 자신을 버리는 자살을 선택하였다.

그 뒤에 남은 사람들에겐 상관 없이 모든 부채 정리를

자살이란 행동으로 결말을 봐 버린 것이다.

남편이 죽은 뒤 정선희 씨에겐 감당하지 못할 엄청난 충격파가 왔다.

 

고 최진실 씨에겐 정성희 씨를 포함한 몇명의 각별한 연예인 그룹이 있었다.

이름하여 " 최진실 사단 " 이란 이름으로 그들의 우정은 각별하였다.

 

그 모든 이상한 블랙홀의 소용돌이는

다시 어떤 악성 루머에 의해 최진실 사단의 핵심격인

고 최진실 씨에게 옮겨 갔다.

그리고 그 후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할 비극이 벌어졌다.

이 정체불명의 분노의 불길 같은 블랙홀 소용돌이의

회오리가 대저 어디로 또 번져갈지 걱정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친권은 분명 전 남편 조성민 씨에게 있겠지만도,

고 최진실 씨의 두 자녀가 최진실 사단의 멤버들이

공동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이 정서 상으로 정도 란 말을 하고싶다.

 

그래서 이런 일련의 묘한 흐름이란 것을 말하려 한 것이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특히 최소한 자식없이, 연달아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연달아 잃어버린 정선희 씨에겐 더 더욱 말이다.

무심코 세인의 악플에 가버린 최진실 씨 !

 

정선희 씨가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의 이유를

고 최진실 씨는 그의 친구 정선희 씨에게 숙제로 남기고
간 듯 싶다.

왜 우리들이 그렇게 격렬한 분노의 블랙홀 소용돌이 회오리 속으로
휘말려야 했었느냐고 .......

고 최진실 씨는 양평 어느 산자락 녘에서 우리들이 같이 산
이 시대에게 그런 화두를 우리 사회에 되묻고 있는 듯 하다.  /    2008.10.05





관광 여행정보(~지도 클릭~)


. 한반도에 중심선을 가로.세로로 그어보면,
  그 정 중앙선 상에 위치한 지세가 바로 고 최진실 씨의 유골이 파묻힌,
  경기도 양평군 땅 두물머리 다.

그녀가 영원히 잠든 두물머리(양수리) 갑산공원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산 10-2번지 노적봉 추모동산



故 최진실 씨 잠든 갑산공원묘 '명당 중에 명당'




  故 최진실 씨가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 묘역(~link~) 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 중 명당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계포란형' 자리라고 해서 청계산 안에 유명산, 또 그 유명산 안에 중미산 자락 자궁자리에 故 최진실이 안치된 봉안(납골)묘가 위치해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도 바로 故 최진실의 봉안묘 앞이다.

  故 최진실은 중미산 해발 400m 지점에 탁 트인 자리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형상이다.

  이 곳에 묘를 쓰면 대대로 자손이 번창한다고 해서 최고의 명당자리로 꼽힌다. 그래서 법조인, 정치인, 경제인 등 국내 웬만한 상류층은 이 곳에 묘를 쓴다고 한다.

  주말이면 풍수지리학자들을 동반한 경제인들로 문정성시를 이룰지경. 하지만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갑산공원묘는 1969년 공원묘로 허가받아 1998년에서야 개발을 시작했으며,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매장묘와 봉안묘를 개방했다.

  지금까지 이 곳에 안치된 시신만 1천200구. 이 가운데 60% 이상이 서울 강남권 거주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장묘의 경우 15년 단위로 각각 1천만원부터 1천500만원 등 자리에 따라 가격이 정해져 있다.



  연예인으로서는 故 최진실이 처음 이 곳에 안치됐다. 故 최진실의 봉안묘 자리는 그녀가 생전에 다니던 강남중앙침례교회에서 2006년 6월 198평방미터(60여 평) 넓이의 부지를 임대한 곳으로 성도중에서는 故 최진실이 처음오로 봉안됐다.

  이곳에는 故 최진실에 앞서 성도 16명이 산골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故 최진실 묘는 여섯명이 함께 봉안되는 곳으로 향후 가족들도 이곳에 봉안될 예정이다.


조이뉴스24 이승호(기자)




                       




 

 

 

 

 

 

 

 

 

 

 

 

 

 

 

 

 

 

 

 

 

 

 

                                고 최진실 씨 생전의 아름답던 사진 모음집


 



삼우제 날 -고 최진실 씨가 울었다.

그녀는 중미산 산새 돼어 서글피 울어왰다.

친구야 내 아이들 마니 사랑해 줘 .....

 

앞줄에 썬그라스를 낀 동생 고 최진영 씨

am12:02.10/03 

 


. 자살의 정당성은 어떤 변명도 필요없는, 어리석기 짝이 없을 자기기만에 불과한 충동적 자기 교살이다 !

============================

. 자살의 물리학

사람은 태어나는 곳은 누구나 모친의 자궁이겠지만 세상을 하직하는 장소와 이유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특히 인간만은 스스로 그 자신의 생명을 끊는 '자살'이란 행위를 한다.

그 이유야 사람마다 다 제각자 다른 것이겠지만 자살이 순전히 정신적인 것으로 생각해 왔지만, 근래들어 그것이 뇌의 물리적인 이유 떄문일지도 모른다는 연구결과에 우린 주목 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 뉴욕의대 신경 생리학자 애넛 비튼과 이스라엘 바이츠만 연구소의 루디 그로스 이서로프가 발표한 자살은 반드시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자살하는 사람의 뇌에 물리적인 구조적 결함에 문제가 있다 란 과학적 연구 분석에 우린 주목해야만 한다.

즉 사람은 기분이 좋아지면 엔돌핀이 증가하고, 기분이 나빠지면 아드레날린이 증가하는데, 자살한 사람 12명의 뇌와 자살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죽은 사람 12명의 뇌를 검사한 결과 ,
자살한 사람인 경우 엔도르핀에 대한 반응인자가 다른 이들의 두뇌에서보다 무려 9배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엔도르핀을 받아들일 그릇이  무려 보통사람의 9배가 더 큰 그릇이다 보니 여간해선 그 그릇이 채워지기 어렵고 그것으로 인한 만성 갈증감이나 심리적 공복감이 상대적으로 충족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항상 우울하거나 불행한 기분에 젖어 들게 된다는 사실이며, 일반인은 그것을 술이나 신경 안정제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은 항상 고통에 민감하고, 행복지수가 떨어져 쉽사리 자살할 확률이 그만큼 증가하게 된다는 학설이다.

일명 프로작이라는 우울증 치료약도 있다지만, 아직까지는 뇌의 구조나 엔토르핀 반응인자 조절이 힘들런지는 잘 몰라도, 최소한 엔도르핀 반응인자의 대소를 사전 진단 받음으로써 자살이란 극약처방에 관한, 그 스스로의 생명 보존의 예방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
. 친권과 양육권은 분명 다르다~!

이런 주장을 할 분명한 이유는  있다.

고 최진실씨와 현 조성민 씨 그리고 조씨의 현 부인인 심씨와 그 동안에 법적인 싸움 과정에서도 그렇고, 고 최 씨가 당한 모든 애증의 오욕을 봐서라도, 두 자녀에게 그 아스라한 슬픔을 고스란히 유전 당하게 할 수란  없다! 란 이유에서가 그 첫번째요,

것은 조씨나 그의 현 부인인 심씨가 나빠서가 아니다.

사람의 인지상정이 본능적으로 그리 작용하기에, 그 꼬일 길을 미리 비켜 가기를 간절 삼절히원해서 이기도 허다.

먼훗날 나는 고 최진실 씨의 딸, 아들이 어미를 능가하는 멋진 배우가 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마 분명 그리 될 터이다.)

기다림이 멀지만 그 뜻이 간절하다면, 그 기간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일터...

절대로 본 어미의 사슴에 못 박은, 그 의붓어미에게로 원 뿌리를 보내선 절대로 안된다는 주장을 펴고싶다.

것은 조씨 개인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어쩌면은, 고 최진실 씨가 그런 미래를 간파하고, 그래서 그 스스로의 소멸 몇달 전에, 그녀 자녀의 성을 조씨에서 최씨로 바꾼 이유라면 이유 일런지도 잘 모르겠다.

이것은 지극히 당사자가 아닌, 개인적인 사견이므로 부디 선의로써 해량해 주시길 ...    /    2008.10.06

--------------------------------------


. 악플 피해 3인의 경험담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10060168&top20=1

. [칼럼]-고 최진실 씨의 집은 잠원동이 아니라 ...
http://news.joins.com/article/3323944.html?ctg=2001

. 우울증 남의 일이 아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3323895.html?ctg=15


. 김지하 시인의 인터뷰 기사
http://news.joins.com/article/3323421.html?ctg=1200

.  <외톨이> 치명적 히키코모리 공포의 피해자 고 최진영 씨
http://twar.hankooki.com/tbattle/view.php?a_id=37570&tag=202


.  우울증의 그림자
http://news.hankooki.com/lpage/health/200810/h2008100702361284500.htm

. 자살, 대부분 사전에 징후… 예방 프로그램 다양화를
http://news.hankooki.com/lpage/health/200810/h2008100702355384500.htm

. 긋바이 캔디
http://spn.edaily.co.kr/news/newspath.asp?newsid=01302166586570624

am7:17.10/05

 
너무나 허망한 최진실씨의 죽음




▶아, 참 정말 허망합니다. 오늘 아침부터 마치 꿈을 꾸는 듯이 머릿속이 몽롱해집니다. 지난 20여년간 국내 최고의 톱스타로 군림해온 최진실씨가 한순간에 저세상 사람이 되다니요.

출근해서 오전에 이 사실을 접한 뒤 기자는 '에이, 설마. 뭔가 잘못 알려진거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잠시후 경찰에서 확인했다는 얘기를 접하고선 목구멍에서 '컥'하는 외마디 비명이 나왔습니다. 좀 무섭기도 하네요.

그렇게 강인했던 최씨가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데, 저렇듯 생을 포기할 수 있는지요.

한때 연예부에서 일했던 기자로서는 10여년전 최진실씨와 인터뷰 할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만큼 최씨의 인상이 강했기 때문일까요.

당시 방송국을 드나들 때 최씨의 움직임은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기사화됐습니다. 기자와 친했던 모방송국 PD는 막 방송국으로 들어오는 기자를 보고 "빨리 최진실이 쫓아가봐, 큰 거 있어"라고 일러주기도 했지요.

기자는 서둘러 방송국 밖으로 나가는 최씨를 붙잡고 몇마디 물어보고선, 드라마 출연 확정과 계약금 등에 대해 기사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서울 강남쪽에서 단독 인터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최씨는 말을 참 잘했습니다. 지금은 그만뒀지만, 저보다 먼저 친했던 우리 신문사의 선배 기자 흉내를 똑같이 내, 저는 인터뷰 도중에도 배꼽을 잡아야 했습니다.

당시 느낌은 "아 탤런트가 이래서 탤런트구나"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습니다.

제가 부서를 옮기면서 이후 최씨와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계속적으로 매스컴에서 그녀의 소식을 접하면서 제 기억속에 최씨는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차로 한남대교를 오갈 때면 "저기가 최진실 집이래"하며 처자에게 얘기를 해주곤 했었죠. "아빠가 인터뷰도 하고 기사도 쓰곤 했어"라며 자랑스레(?) 얘기하기도 했는데요.

▶ 최씨를 알기 전 먼저 기자와 인연을 맺은 사람은 매니저였던 고 배병수씨였습니다. 당시 취재 관행이 일차적으론 대부분 배씨를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괄괄한 성격의 배씨는 다른 매니저와는 달리 방송국 안에서도 거의 안하무인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매니저들은 'PD들의 밥'이었다고 표현하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요. 그렇지만 배씨는 달랐습니다.

약간은 거만하게 책상에 버티고 앉아 엄청 큰 목소리로 '떠들곤' 했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최진실이라는 톱스타를 데리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스티븐 시걸 처럼 머리를 길게 땋고선 방송국 대기실을 오가는 배씨는 그야말로 당시 매니저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올렸다고 해야 하나요.

기자야, 당연히 밥도 같이 먹고, 술자리도 함께 하면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 친구는 기자들한테도 조그만 친하면 무조건 반말이었습니다. 기분나쁘지 않은 반말있잖아요.

때문에 기자들 중에선 안티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저로서는 작은 얘기라도 하나더 얻고 싶어 그런 건 신경쓸 겨를이 없었지요. 배씨가 다시 키운 탤런트가 엄정화씨입니다. 최진실 사단이자 최씨와는 언니-동생 사이였습니다.

엄씨 역시 데뷔당시에는 영화의 조연 역할 정도에 그치면서 그다지 부각되진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타덤에 올랐지요. 참 성격도 밝고, 발랄한 편이었지요.

▶ 제가 부서를 옮기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TV뉴스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야산에서 배씨의 사체가 발견된 것입니다. 아 정말 그때의 충격이란 정말 말로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중에 그나마 가장 친했던 사람중의 한명이었는데요.

이 사건도 벌써 10여년이 흘렀는데요, 최씨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다시 뇌리에 어제 일처럼 그대로 되살아납니다.

'저럴 수 밖에 없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너무 크게 다가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발췌:  스포츠조선 나성률 기자 블로그

am1:13.10/03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