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6일 토요일

염료 - 네로황제 시절에는 자주색 옷을 입으면 사형

. 염료 이야기

 

 

▶ 네로황제, 자주색 사용하면 사형

 

 

" 너의 대리석은 흙의 경결, 너의 금은은 흙의 잔사에 지나지 못하고 너의 명주옷은 벌레의 잠자리, 자포는 깨끗지 못한 물고기 피에 지나지 못한다.’

이양하의 ‘페이터의 산문’에 나오는 이 구절은 영국의 월터 페이터가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에 나온 글 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물욕이란 게 이렇듯 하찮은 것들에 집착하는 것이니 오로지 마음의 평정만을 추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자포(紫袍)' 란 바로 황제가 입었던 자주색 망토를 의미합니다.

 

염료를 얻기 어려웠던 고대에는 색깔있는 옷은 권위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천자는 황색의 용포를 입었고, 로마의 황제들은 자포를 입었습니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 맞다면 자포의 자주색은 물고기의 피 때문이겠죠.

 

로마시대 때 자주색은 황제 자주(imperial purple)라고 해 오직 황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색이었습니다.

 

기원전 1600년 경부터 페니키아인들이 티레 지방 특산 소라고둥으로 염색을 했다고 해서 티레 자주(Tyrian purple)라고도 불렸습니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는 이 염색법을 “소라고둥을 채집한 다음 농도가 진한 소금물에 여러날 담가둔다.

 

천이나 실을 이 용액에 한번에 수시간씩 여러번 담그기를 반복한 다음 햇볕에 쪼이면 자주색으로 염색된다”고 묘사했습니다.

 

20세기 초 파울 프리뢴더란 독일의 화학자가 이 염색법을 재현해봤는데, 소라고둥 1만2천개에서 불과 1.4g의 염료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토록 귀한 염색이었기에 황제만이 입을 수 있었겠지요. 어쨌거나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자포가 어떻게 염색되는지 몰랐던 모양입니다.

동로마 비잔틴제국에서 황제의 아들로 태어난다는 표현을 영어로 ‘born to the purple’이라고 합니다.

 

소라고둥을 이용한 자주색 염색법은 1453년 오스만투르크제국에 의해 동로마가 멸망하면서 잊혀졌다고 합니다. 황제와 운명을 같이한 셈이죠.

그런데 최근 영국의 한 아마추어 화학자가 누구나 손쉽게 황제의 자주색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 화제가 됐습니다.

 

은퇴한 엔지니어인 존 에드몬드는 티레산 소라고둥 대신 슈퍼마켓에서 흔히 파는 새조개를 이용했습니다.

 

이것을 나뭇재와 함께 물이 든 큼직한 병안에 넣고 50℃에서 10일 간 보관했습니다. 여기에 양모를 집어넣었더니 처음엔 초록색을 띠다가 햇빛에 말리자 곧 자주색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에드몬드는 영국 멘체스터대학에서 개최된 사이언스 페스티벌에서 고대 자주색 염색법을 재현했을 뿐 아니라 영국 레딩대 필립 존 박사와 함께 밝힌 염색 메커니즘도 소개했습니다.

 

그들이 밝힌 자주색 염색의 핵심은 다름 아닌 박테리아였습니다.

소라고둥에 들어있는 자주색 입자는 물에 잘 녹지 않습니다. 박테리아는 이 입자에 전자를 첨가해 환원시킴으로써 물에 녹게 만든 것입니다.

 

염색 과정에서 들어가는 나뭇재는 용액이 산성이 되는 것을 막아 염료의 환원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 것이죠.

전통염색에 박테리아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1998년에 처음 밝혀졌습니다. 16세기까지 영국에서는 대청(woad)이라는 겨자과의 이년생 풀로 푸른색을 냈습니다.

 

대청에는 인디고라는 푸른색 염료 입자가 들어있는데, 마찬가지로 물에 잘 녹지 않습니다. 에드몬드와 존 박사는 이때 염료를 환원시켜주는 것이 클로스트리듐이라는 박테리아임을 밝혀낸 것입니다.

 

식중독, 장염 등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듐은 높은 온도에서 당분을 먹고 자라며 산성인 환경을 싫어합니다.

 

대청 염색에는 왕겨와 나뭇재도 함께 들어갑니다. 이때 왕겨는 바로 클로스트리듐의 먹이가 되는 당분이 되고 나뭇재는 산성이 되는 것을 방지해줍니다.

에드몬드와 존 박사는 전통 염색법이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 청바지를 염색할 때는 인디고와 함께 티톤산나트륨이라는 유독성 환원제를 사용합니다.

 

전통 염색은 이런 화학물질이 필요없는 친환경 염색법인 셈이죠. 존 박사는 박테리아를 이용한 대량 염색법을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편 인디고도 요즘엔 석탄이나 석유에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또 유독물질이 부산물로 나와 골칫거리입니다.

 

박테리아는 이 문제도 해결해줄 전망입니다. 지난해 미국의 한 생명공학기업은 대장균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인디고를 생합성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아우렐리우스가 살아 돌아와 ‘자포는 저 고마운 박테리아의 공’이라고 칭송할 법도 하겠지요.

이 귀한 염료는 이집트의 파라오나 로마 황실, 혹은 유럽의 왕실이나 귀족 같은 최상층 인사들만 사용할 수 있는 값비싼 물질이어서 ‘임피리얼 퍼플(황제의 자주색 염료)’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절(서기 4세기), 이 염료로 염색한 최상품 옷감 1파운드는 로마 은화 5만데나리온으로 같은 무게의 금값에 해당 되었습니다.

 

약간 저렴한 임피리얼 퍼플도 파운드당 1만6000데나리온에 달했습니다. 당시 석공의 일당이 50데나리온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이것이 얼마나 비싼 물품인지 알 수 있겠죠.

 

네로 황제는 자신만이 이 색깔을 사용할 수 있으며, 다른 누구든 이 염료를 쓰다가 발각되면 사형에 처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색은 곧 고귀한 혈통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자주색 속에서 태어났다(born in purple)’는 표현이 한 예인데, 이 말은 비잔틴 제국에서 황녀가 자주색 옷감을 두른 방 안에서 아이를 낳는 데에서 유래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붉은색 염료로
 
붉은색 염료 원료인 꼭두서니.(왼쪽) / 푸른색 염료 원료인 인디고페라 팅토리아.(오른쪽)
 
는 꼭두서니(madder)가 있습니다. 이 식물의 뿌리를 가공하여 얻는 염료는 고대부터 가죽, 양모, 면, 비단을 물들이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야생 꼭두서니는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지만 원래는 인도에서만 재배되었는데, 널리 알려진 종류로는 루비아 팅토룸(Rubia tinctorum)이나 루비아 코디폴리아(Rubia cordifolia)가 있습니다.
 
인도에서 성소(聖所) 장식용으로 쓰이던 붉은색과 검은색 직물들은 이 염료를 사용한 것인데, 바그리(Vaghri)라는 카스트가 이 일을 전문으로 했답니다.

다만 꼭두서니 염색은 세탁에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빛과 세탁에 잘 견디는 붉은색을 얻기 위해 지역에 따라 다양한 소재의 매염제(媒染劑·섬유에 물감을 고착시키는 물질)가 개발되었습니다.
 
주로 명반이 쓰였지만, 그 외에도 크롬, 철, 소금, 식초, 가성 소다를 섞은 합성제도 쓰였다. 이런 물질들이 직물 속에서 염료를 꽉 ‘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물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mordre에서 매염제를 뜻하는 단어 mordant가 나왔습니다.) 매염제의 구성 성분과 정확한 함량은 오랫동안 가족이나 공동체 안에서만 전수되는 비법이었습니다.
 
이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직물에 아무리 색을 들이려 해도 세탁 과정에서 색이 바랬었고, 따라서 오랫동안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인도 염색술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안달이 났었습니다.

드디어 17세기 중반 오스만제국은 인도에 정기적으로 왕래하던 콘스탄티노플 직물 상인을 통해 그 비밀의 일부를 알아냈습니다.
 
베나레스(오늘날 바라나시) 지역의 염색 기술자 한 명을 터키로 몰래 데려온 것입니다. 터키의 아드리아노플은 면과 꼭두서니를 다 재배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는데, 이 지역의 아르메니아인 염색공들이 꼭두서니 염색의 비법을 전수받아 아주 아름다운 붉은색 직물을 생산하여 터키와 유럽 고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이 색은 ‘터키 레드(Turkey red)’라 불렸습니다.
 
이 비법은 다시 1672년에 마르세유에 전파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아르메니아 공동체 내의 날염업자가 터키의 동족에게서 염색법을 전수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아름다운 색을 내는 인도 본토의 비법은 여전히 비밀이어서 각국 정부는 인도에 계속 스파이를 보내 이 비법을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18세기에 비로소 인도 염색의 비밀이 자세히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예수회 신부들까지 나서서 열심히 비밀을 염탐한 덕분이었습니다.

코치닐 벌레 7만마리서 붉은색 염료 1파운드 얻어 ...

‘황제의 자주색 염료’라는 별명을 가진 티리언 퍼플 염료의 원료인 무렉스 브란다리스 조개.
아메리카 대륙을 서양인이 발견한 이후 코치닐이라는 또 다른 붉은색 염료가 알려졌습니다.
 
코치닐은 원래 중부와 북부 아메리카의 인디오들이 개발한 염료였다. 이는 노팔 선인장을 먹고 사는 코치닐 벌레(Dactylopius coccus·연지벌레라고 한다) 암컷으로 만드는 것으로, 우아한 주홍색을 내는 데다가 다른 염료보다 색이 더 잘 들어서 크게 환영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유럽인들은 코치닐이 벌레라는 사실을 모르고 어떤 특정한 나무의 열매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이 우아한 선홍색은 군주들과 귀족, 대부호 상인들이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는 용도로 많이 애용했습니다.
 
예컨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모든 궁녀들과 시종들에게 빨간색 옷을 입혀서 자신의 위엄을 과시했다. 군주의 전통적 색이 빨간색이라는 것은 미국에까지 그대로 전해져서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의 저명한 정치가들 역시 주홍색 의복을 즐겨 입었습니다. 대귀족들이나 부유한 신사들도 마찬가지로 붉은색 태피스트리(벽을 가리는 장식 천), 커튼, 방석으로 자신의 부를 과시했었죠.
 
코치닐은 이런 용도로 갈수록 많이 쓰이게 되었는데. 코치닐 역시 생산하기가 매우 어려운 고가품이었습니다.
 
코치닐 벌레 7만마리를 모아야 1파운드를 얻을 정도로 워낙 손이 많이 가는 귀한 물품이어서, 원래의 아메리카 문명 내에서도 대개 정복자가 피정복민에게 생산을 강요하여 얻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 역시 인디오들에게 유럽 물품을 강매한 다음 그 대금으로 코치닐을 바치도록 하여 이 귀한 염료를 얻어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럽으로 코치닐이 대량 들어온 결과 티리언 퍼플이나 꼭두서니 같은 기존 염료들이 위축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색깔 속에서 살아가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얼마나 다양한 색이 우리를 휘감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19세기 이후 화학공업의 발달로 많은 인공 염료가 개발된 이후의 일입니다.  그 이전에 대부분의 사회는 색의 빈곤 속에서 살았습니다.

 

특히나 일반 대중에게는 의복이든 실내 장식이든 화려한 색깔은 거의 접하기 힘든 사치이거나 아예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색은 단순히 눈으로 감지하는 감각 이상의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고대 인도에서는 색깔마다 특별한 상징성이 깃들어 있었다. 노란색은 ‘바잔트(vasant·봄)’의 색으로 꽃들의 색이며 남풍(南風)의 색입니다.

 

인디고(닐라)는 힌두 신 크리슈나의 색으로서 비를 머금은 구름을 상징하며, ‘하리 닐라’라는 또 다른 뉘앙스의 푸른 인디고는 하늘이 비치는 물의 색입니다.

 

사프란(게루아)은 요기(요가 수도자)의 색이요 땅을 거부하는 시인과 예언자들의 색입니다….

. 근대 이전에 이런 색들은 어떻게 얻었을까?

붉은색 염료로는 티리언 퍼플과 꼭두서니, 코치닐이 대표적입니다.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은 고대 페니키아에서 생산되던 최고급 자주색 염료입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 전역에서 교역을 하였고 여러 곳에 식민 도시들을 건설했는데, 그중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곳이 티레(Tyre 혹은 Tyros라고도 합니다.) 였습니다.

 

오늘날 레바논의 도시인 티레에서 생산된 염료가 바로 티리언 퍼플이며, 이 염료로 물들인 자주색 고급 직물은 페니키아인들이 거래하는 대표적 상품 중 하나였습니다.

 

티리언 퍼플은 무렉스 브란다리스(Murex brandaris)와 푸르푸라 하이마스토마(Purpura haemastoma)라는 두 종류의 조개에서 얻는데, 아주 짙은 자주색을 띤다. 그리스인들은 이 색을 포이닉스(phoinix)라고 불렀으며, 페니키아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염료를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헤라클레스였는대, 헤라클레스는 조개를 씹어 먹은 자기 개의 주둥이가 자주색으로 물든 것을 보고 염료 물질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인도의 붉은색 염색 비법 알아내라며, 유럽 각국 앞다퉈 스파이 파견
        선인장 벌레로 만든 붉은 염료는 유럽 귀족 권위의 상징으로
파란색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색이지만, 빨간색에 비해 파란색을 얻을 수 있는 염료가 많지 않았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널리 쓰이던 파란색 염료로는 인디고(indigo·쪽, 印度藍이라고도 한다)가 대표적입니다.

인디고는 아시아와 아메리카에 자생하는 식물인데, 식물학자들에 따르면 인디고에 속하는 식물은 모두 350종이나 되지만 과거에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인디고페라 팅토리아(Indigofera tinctoria)였습니다.
 
산스크리트 기록에 의하면 4000년 전에 인도에서 이 식물을 염료로 사용했으며, 그때 이미 이집트로 수출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미라의 옷을 염색하는 데에 이 염료를 사용했습니다.

▲ 코치닐 염색 군복을 입은 18세기 영국군.(왼쪽) / 코치닐 염색 옷으로 위엄을 과시한 엘리자베스 1세.(오른쪽)
푸른빛의 인디고 생산지도 인도

인디고 염색에는 매염제가 필요없지만 그 대신 인디고 용액을 준비하고 물들이는 과정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인디고액을 담은 통에다가 조개껍데기에서 얻은 석회나 오줌을 넣어 사흘 동안 끓여 발효시킨 다음 이 통에 직물을 담갔다가 꺼내면 처음에는 흰색이었다가 녹갈색을 거쳐 점차 푸른색이 나타납니다.
 
사실 이 염료를 얻는 식물의 녹색 잎을 보면 도무지 파란색을 얻을 것 같지 않아 보이니, 청출어람(靑出於藍·쪽에서 뽑아낸 푸른 염료가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선생이나 선배보다 나을 때 쓰는 말)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 과정을 화학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인디고를 얻는 원천 식물에서 인디컨(indican)이라는 물질을 얻는데 이 자체는 무색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알칼리 환경에서 발효하면 인디컨이 인독솔(indoxol)이라는 물질이 되고, 이 물질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면 푸른색 인디고가 되는 것입니다.
 
인디고 염색은 염색액에 담그는 횟수와 사용된 첨가물에 따라 청색 종류가 나뉘는데, ‘백과전서’에는 가장 연한 색부터 가장 짙은 색까지 13단계의 색상을 분류해 놓았습니다.
 
직물을 인디고 용액에 담갔다가 꺼내기를 계속하면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청색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친 인디고 염색은 빛에 강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14세기에 제작되어 앙제에 보관된 요한계시록 태피스트리(Apocalypse tapestry)를 보면 다른 식물성 염료는 시간과 더불어 퇴색했으나 인디고를 사용한 푸른색은 여전히 짙게 남아 있습니다.

오랫동안 가장 중요한 인디고 생산지는 인도였습니다.
 
75㎏의 인디고 염료를 얻으려면 무려 30t의 잎사귀가 필요하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역시 다른 염료와 마찬가지로 생산하기 힘들고 귀한 물품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생산된 인디고는 뛰어난 품질 덕분에 세계 각지로 수출되었는데, 중세 말기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푸른색 고급 모직물을 생산했는데, 그 염색법은 절대 엄수해야 할 비밀에 속했습니다.
 
사실 그 비밀의 핵심 요소는 다름 아닌 인디고였는데, 이탈리아 상인들은 키프러스나 알렉산드리아, 특히 바그다드에서 인디고를 구입했습니다.
 
유럽 본산의 푸른색 염료인 대청(大靑·woad)을 사용하던 장인들은 인도에서 생산되는 ‘악마의 염료’를 수입 금지하도록 압박을 가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상인들은 인디고를 몰래 숨겨서 들여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인들이 중남미 아메리카로 갔을 때, 놀랍게도 그 귀한 인디고를 재배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1570년경에 그들은 아시아의 종자를 들여와서 실험 재배해 보았는데, 새로운 땅에 잘 적응하여 아주 잘 자라나서 17세기에는 과테말라에서만 유럽으로 수십만 파운드의 인디고가 수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는 동안 유럽 내에서는 30년전쟁(1618~1648)으로 독일의 대청 재배 기반이 거의 무너졌고, 그 결과 아메리카의 인디고가 더욱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밝은 인디고 청색이 크게 유행하자 유럽 각국은 더 많은 염료를 확보하기 위해 아메리카의 자국 식민지에서 흑인 노예들을 대량 고용하여 생산을 확대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디고는 아시아의 종자와 생산 기술을 아메리카에 이식하여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을 이용해서 대량 생산한 다음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각지의 의상에 아름다운 푸른색을 입히는 데에 사용되었으니, ‘색깔 세계화’의 전형적 사례라 할 만 합니다.

인디고의 생산 과정을 보면 그처럼 아름다운 색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는데요,
 
인디고 잎을 수확하여 염료를 생산하는 과정을 살펴 보자면 ...

19세기 인공염료 등장… 무채색 세상에서 色의 시대로

코치닐 벌레. 왼쪽이 암컷
인디고를 수확할 때에는 잎에 붙은 가루 같은 물질이 떨어지지 않도록(이 가루가 매우 중요한 염료 성분이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작물을 잘라서 묶음을 만듭니다. 그리고 큰 통에 이 잎 묶음을 쌓고 물을 붓습니다.
 
햇볕의 열기를 받으면 4시간 정도 지나 이 안에서 인디고가 발효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나무를 위에 띄워서 잎들이 물에 잠기도록 합니다.
 
24시간이 지나면 발효로 인해 열이 생겨서 통 안의 물이 부글거리고, 물은 짙은 청색을 띠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인디컨이 물에 빠져나오는 과정입니다.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정확히 언제까지 발효하도록 두느냐 인데, 이 액체는 처음에 역한 냄새가 나지만, 어느 때가 되면 다시 향긋한 냄새로 바뀌고, 물 색깔은 황록색을 띠게 됩니다.
 
이즈음에서 물을 빼는데, 정확히 언제 빼느냐가 핵심적 사안입니다. 이 물을 모아 두 번째 통에 옮긴 다음 이 용액을 막대기로 두드립니다. 약 세 시간 정도 이 작업을 하면 액체가 서서히 응결하며 인디고 알갱이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석회수를 넣으면 이 과정이 빨라지는데, 알갱이들은 처음에는 녹색이지만 많이 두드릴수록 푸른색이 짙어집니다. 너무 적게 두드리면 알갱이가 형성되지 않아서 다시 물에 녹고, 너무 많이 두드려도 알갱이가 부서져서 역시 용액에 녹아버리고, 이처럼 인디고 염료 생산에는 주의할 점이 많아서 때로 잠깐의 실수로 모든 일이 허사가 되곤 한다.
 
두드리기 작업이 끝나면 10시간 가까이 그대로 두었다가 물을 뺍니다. 그리고 이 물질을 말총으로 만든 망태에 넣어 음지에서 대여섯 시간 말려서 물기를 없애는데, 이것을 압착기에 넣어 마지막으로 수분을 없애고 바람이 통하는 곳에 둡니다.
 
이때 조심할 것은 파리들인데, 냄새에 꼬여 파리가 날아와서 알을 낳으면 자칫 마지막 순간에 상품을 모두 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메리카 식민지의 인디고 재배는 18세기에 크게 확대되다가 이 세기 말에 급격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주요 생산지인 생도맹그에서 노예 봉기가 성공한 데다가(이것이 역사상 유일하게 성공한 1804년의 흑인노예 반란이었다) 전쟁이 발발해서 이제 염료보다 식량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에 아메리카의 인디고 생산이 급감했답니다.
 
그 결과 다시 인도가 인디고 최대 생산국의 지위를 되찾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유럽의 주문이 점차 많아지자 영국과 프랑스 상인들은 아메리카의 생산에만 의존할 수 없었으므로 벵골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인디고 제조인들을 양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도가 되찾은 우위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1897년 바이어(Adolf von Baeyer·190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합성 인디고를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화학적으로 생산하는 인공 염료 때문에 아메리카든 인도든 천연 염료 생산은 파국을 맞았는데,
 
이제 아름다운 색을 얻기 위한 인류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가 만들어 집니다.
 
 황제와 귀족, 혹은 부유한 상인들만 누리던 색은 일반 시민들에게로 다시  돌아갔고, 모든 사회는 무채색의 빈곤으로부터 풍부한 색의 풍요를 누리게 됩니다.

글쓴이 : / 주경철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서양사학 석사

약력 :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박사(네덜란드사 전공). 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문화로 읽는 세계사’ ‘대항해시대’ ‘네덜란드’ ‘문명과 바다’ 등 저서 다수 

 

 

. 황제의 색깔 자주색 / 오석봉의 에피소드 과학사

http://inepisode.com.ne.kr/index.html

 

. 네로황제의 사형 집행인은 곰치

http://blog.naver.com/sunyeab/60049797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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