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재건한다는 것은 빌딩을 새로 짓고 헌 집을 불도저로 밀어 붙여 신축 아파트를 짓는다는 생각은 너무 단순한 발상이다. 낡고 헌집에 예술가의 붓과 땀이 어려 빗어낸 하나의 아트적인 그림과 조각품은 도시 자체의 차원과 격국을 한차원 높히는 동시에 새로운 도시 재개발의 지평을 열게 할 수 있다. 여기 문래동 철제 공구 상가의 변신을 찾아가 보라. 도시계획 전문가나 도시 재개발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런 곳을 벤치마킹해 재개발이란 개념에 관한 발상의 전환을 꾀해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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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이야기]-문래동 예술공단-철공소, 예술의 옷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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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은 두 가지 얼굴을 가졌다.
한강조망권의 고층 아파트들이 줄을 서 있는 한쪽으로
회색빛 철공단지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캉캉캉’ 한낮의 망치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 때쯤
이곳은 또 다른 얼굴을 가진다.
문래동 예술공단에 가서 사진을 찍으려면 철공소들이
문을 닫는 주말에 가야 한다.
대부분의 일러스트와 벽화가 철공소 셔터나 문 위에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토요일로 날을 골랐는데 오후 2시가 넘어서도
철공소들은 문을 닫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따뜻한 봄볕 아래 신문을 펼친 어느 철공소 사장님에게 가게들이
언제쯤 문을 닫는지 물었더니 “그거야 오야 맘이지”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닫힌 문에 그려진 벽화를 보겠다고 영업 종료를 재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다릴 겸 해서 철공단지를 둘러보니 줄을 선 철공소 안에서
부지런히 철을 깎고 녹이는 그 풍경이 참 낯설다.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근대사의 흔적이다.
조선시대 목화실로 유명했던 문래동은 일제 강점기에는
‘실을 뽑는 마을’이라는 뜻의 사옥정(絲屋町)이라 불리었을 만큼
섬유공업이 번성했던 곳이다.
1960년대까지 방적공장이 많았고 공장에 소규모 기계를 납품하거나
수리하는 크고 작은 철공소들이 모여들며 대규모 철공단지를 형성했다.
밤낮없이 철을 재단하던 당시의 명성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철제는 문래동으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철제산업이 쇠퇴기로 접어들고
공장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한때 800여 개에 달했던 철공소는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철공소의 쇠퇴가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는 기회가 됐다.
저렴한 임대료에 매력을 느낀 젊은 예술가들이 5, 6년 전부터 상인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3, 4층 규모의 낮은 건물들이 이어진 공단의 1층은 대부분 철공소가 자리를 잡고 있고, 지하나 2, 3층의 빈 공간은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되었다.
기계 소리로 가득 찬 곳이니 작업 중 발생하는 소음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이곳의 독특한 분위기도 좋았다.
현재 일러스트 작가 이소주를 비롯해 화가 박윤정, 작가 위영일 등 130여 명의 예술가들이 50여 개 작업실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벽화는 물론 전시회와 사진전, 아트 페스티벌 등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그렇게 회색빛 철공단지는 예술의 옷을 입었다.
문래동 예술공단 가는 길 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에서 직진해 ‘광명수산’을 끼고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기업은행이 보이고 그 옆 ‘신흥상회’가 예술공단 초입이다. 벽화를 보려면 철공소들이 문을 닫은 토요일 오후 3시 이후와 일요일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토요일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늦은 주말을 맞은 철공소에 ‘차르륵’ 셔터가 내려진다. 기계 소리가 멈춘 적막한 철공단지. 잠들어 있던 예술 작품들이 눈을 뜰 시간이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강은호
레이디 경향 기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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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기의 추억 (오리지널 & 번안곡) 노래듣기 http://sarahmusic.net/140058793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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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4일 금요일
문래동 - 철공소, 예술의 옷을 입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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