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9일 일요일

사재기 현상이 없는 한국 사회 분석


. Korea => Seoul Tour Online guide (English)
http://english.visitseoul.net/index

 When the Korona 19 incident ends, you must come to Seoul, Korea. If you are an intelligent person in the 21st century, you must come and see the DMZ of Korea.



사재기 패닉, 글쎄 한국에선 왜 없을까?


[아무튼, 주말]

. 사재기 물리친 한국 소비자들


대형마트에서 휴지 쟁탈 육탄전이 펼쳐진다.
식료품을 못 산 간호사가 제발 사재기를 멈춰 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코로나 사태 속 미국, 영국, 호주 등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불러온 나라들의 풍경이다.
그런데 이 사재기 광풍이 한국은 비켜가는 형세다.

BBC,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서 이유를 분석할 정도다.

한국 사람이 유독 위기에 강한 민족이어서일까, 사회 시스템 덕일까.
외부 시선이 아닌, 우리 내부 전문가와 일반인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일러스트= 안병현
사재기 물리친 거미줄 유통

 대구에 사는 워킹맘 A(46)씨는 지난달 중순 31번 확진자가 나타난 바로 다음 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 대형 마트로 달려갔다. 아뿔싸, 라면·생수 매대가 휑했다. 당황했지만 평상심을 찾는 데엔 하루면 충분했다.

 "다음 날 다시 갔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매대가 꽉 차 있었어요. 굳이 일상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이유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 출렁했다가 금세 제자리로 돌아왔지요." A씨의 일상 복원력은 유통에 대한 신뢰였다. 이웃도 마찬가지.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대구에 사재기 도미노는 없었다.

 한국에서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없는 데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유통이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분석연구소 소장은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는 우리도 사재기가 심했다. 그때와 차이라면 새벽 배송까지 등장할 정도로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배송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소장은 "민간 유통 업체들이 구축한 배송 시스템이지만 위기에도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소비자들의 믿음이 강하다. 뉴욕타임스에서 언급한 한국의 '사회적 신뢰(social trust)'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 온라인 매체 'VOX' 등에 따르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코로나 사태 이후 주문 폭주를 감당 못해 일부 품목의 미국 국내 배송이 한 달 가까이 지연될 수 있다고 예고했다.

 한국 온라인 유통업체가 사태 초반 며칠간 배송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금세 정상을 되찾은 것과 비교된다. 쿠팡 관계자는 "한국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그간 물류 인프라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온 것이 이번에 빛을 발했다.

 그런데 진짜 박수받아야 할 사람은 한국 소비자"라고 했다. " 외국 관계자들이 정말 신기해하는 게 한국에선 택배 상자를 문앞에 둬도 훔쳐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이 덕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쉽게 전면 비대면 배송을 시행할 수 있었어요. " 촘촘한 유통망에 성숙한 시민 의식이 더해져 비상시에도 배송 차질이 없으니 사재기가 필요 없게 됐다는 얘기다.

 다양한 유통 채널도 중요한 포인트.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미국, 호주 등은 대형마트만 덩그러니 있어 이곳이 문을 닫으면 물건 살 데가 마땅치 않은데 한국은 거주지 근처 유통 채널이 다양하다.

 편의점, 동네 수퍼, 대형 할인점이 곳곳에 있고, 온라인 유통도 잘돼 있어 사재기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했다.

 원룸에 사는 1인 가구 B(48·회사원)씨는 그중 편의점 수혜자다. "집이 좁아 사재기해도 쌓아놓을 데가 없어요. 평소에도 원룸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을 우리 집 냉장고라고 생각해요(웃음). 편의점에 물건이 동나지 않을 거라고 믿기에 사재기도 하지 않습니다."

. 위기 불감? 위기 둔감력!


"초등학교 4학년 때 밥그릇 하나 수저 한 벌만 들고 피란 갔어요. 먹을 게 없어 미군들한테 '기브 미 초콜릿' 하며 구걸했던 끔찍한 기억이 있어요. 바이러스 전쟁요? 진짜 전쟁을 겪은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닙니다."

 6.25 한국전쟁을 경험한 조정경(80·경기도 하남)씨는 사재기는 생각도 안 한다고 했다. "전쟁 끝나고 미숫가루를 비상식량으로 쟁여두고 피란 보따리도 싸놓고 지냈는데 지금까지 큰일이 없었다. 코로나 사태도 곧 지나갈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한국 사람의 의연함이 일제강점기, 6·25, IMF 외환 위기, 북핵 등 굵직한 위기를 겪으면서 생긴 학습 효과라는 시각도 있다. 위기를 거치며 길러진 '위기 둔감력(鈍感力)'이 바이러스 공포에 맞서는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둔감력'은 2007년 일본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가 '사소한 일에 동요하지 않는 둔감함이 결국 힘이 된다'는 의미를 담아 만든 말이다.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한 마트의 생필품 매대가 텅텅 빈 모습.(아래 사진 참조) 
코로나 사태가 확산하자 미국에서도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샌프란시스코 마트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이를 '양치기 소년 효과'로 설명했다. "분단국가로서 지속적인 안보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매번 별일 없이 지나갔다. 어느샌가 또 속겠느냐는 심리가 발동하면서 웬만한 위험 상황엔 무감해졌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도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의 반응도 비슷하다. 신윤주(25)씨는 "외국에선 북한 도발을 보면서 곧 전쟁이 날 것처럼 불안해하지만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인지 위험을 못 느낀다. 전쟁이 안 날 건데 왜 사재기를 귀찮게 하는가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직장인 C(25)씨는 "어릴 때 남북한 긴장이 고조돼 부모님이 라면 몇 상자를 쟁여놓은 적이 있다. 원래 우리 가족이 라면을 안 좋아하는데 주변에서 사니 따라 샀다가 나중에 먹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몸으로 배운 '사재기 무용론'이었다.

. 절대적 빈곤 모르는 세대, 사재기 안 해


"지금 20~30대는 절대적 빈곤을 겪어보지 않았어요. 뭐 먹을지 고민은 해도 먹을 게 있을까라는 고민은 안 해봤어요." 김창현(34)씨는 "보릿고개를 경험한 부모님 세대만 해도 생존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식량 부족을 느껴봤기에 재난이 닥쳐올 때 최소한 굶어 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비상식량을 사재기하는 것 같다"며 "우리 세대는 굶어 죽을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체감이 안 되니 사재기를 안 한다"고 했다.

김문조 교수도 "한국 사회가 빈곤 사회에서 급격히 발전해 풍요 사회로, 다시 과잉 풍요 사회로 진입한 상태다. 젊은 세대는 생필품 곤궁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다. 마트에 가면 늘 물건이 가득 쌓여 있는 것에 익숙하니 물자난이 일어나리라곤 상상을 못한다. 그러니 사재기를 안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한국의 'we' 정신


 "코스트코, 월마트같이 원래 대량 구매를 하러 가는 마트는 물론이고 고급 마트 격인 홀푸드도 탈탈 털리는 걸 보니 당황스러워요. 텅 빈 마트를 보면 없던 패닉도 생깁니다.

 전운이 감도는 전쟁터 같아요." 연구교수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국내 모 대학 법학과 교수 D(43)씨는 멀리서 한국의 차분한 대응을 지켜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람은 정부 중심 대처에 익숙해 북한 문제든 물난리든 가뭄이든, 상황이 나빠지면 정부가 공무원이나 군인을 동원해서라도 해결해 줄 거라는 기대가 있다.

 코로나 사태도 정부 중심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침에 따라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반면 미국 사람은 연방 정부는 너무 멀고 지방 정부는 서비스가 느려 정부가 해결하기를 앉아서 기다리기보다 개인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다. 이 때문에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는 듯하다"고 했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철학하는 엄마'를 연재하는 이진민(정치학 박사)씨는 '자유와의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독일에 체류 중인 이씨는 "서구에서는 높은 수준의 자유와 개인주의로 인해 개개인의 자유 문제가 민감한 이슈다.

 이 자유로운 사람들을 통제하려면 오히려 출입통제, 외출금지령 등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 보니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는 듯하다"고 했다. 그는 "위기 시 스스로 자제하고 잘 따르는 한국 사람들의 'we(우리) 문화'에 더해 정부가 투명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시스템을 밀고 나가 시너지를 낸 것 같다"며 "개인의 자유가 아예 없거나 반대로 너무 중시되는 등 양극단으로 치우친 시스템에선 사재기 불안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 조선일보 김미리 기자 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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