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9일 금요일

KOREA DMZ LINE (Demilitarized zone) ; 비무장 지대

 

 

아마도 전쟁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앞으로 끊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군사끼리만 전쟁터에서
맞붙어 군인들끼리 창칼로 싸우는 방식으로 싸우던 시대에는 군인끼리만
죽고 죽이는 싸움터에 희생자는 한정되어 왔다.

 

허나 요즘의 전쟁 형국은 군인 뿐만 아니라 무기의 발달로 인해 애매한
민간인의 희생자 비율은 점차 점증되어 왔으며 향후의 전쟁터 양상은
아마도 인간이 아닌 로봇 군인들이 전장을 주도하며 전투에 투입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근대 18세기 초에 전쟁을 할 때 민간인 대 군인의 희생자
비율이 5대 95 이었던 희생자 비율은 제1,2차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애궃은
민간인의 희생자 비율이 점차 높아지더니, 6.25 한국전 때는 점차 치솟다가
베트남 전쟁에서는 이제 거꾸로 군인과 민간인 희생자 비율이 5대 95로
역전되었다고 한다.

 


 


 

아무 방비 대책도 갖지 못하고, 속수 무책으로 공중에서 지상에서
바다에서 강에서 무시무시한 핵무기와 각종 생화학 무기에
전 인류는 수십번 멸망해도 남을 만큼의 거대한 군사력에
포위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이데올로기의 싸움터로 서로 총칼을
들고 맞붙어 있는 첨예한 남북한의 DMZ 지대  !

 

 

지금도 남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막강한 화력의 북한군은
총 120만명의 대규모 정규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800여 기의 각종 미사일,
10만명의 특수부대와 5000톤이상의 생화학 무기 그리고 3800여대의 전차와
총 430문의 다연장포을 포함한 1700여문 야포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
300여기의 전투헬기를 포함한 9척의 전투 구축함과 소흠급 및 코마급 등등,
총 120척의 전함을 가지고 있으며, 아울러 가공할 파괴력의 숫자를 알지 못할
핵탄두 및 대륙간 탄도 미사일를 무기로 북한은 한반도와 동북아을 넘어
미국 본토의 평화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핵무기 외에 가장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것은

저격수를 포함한 North korea special army 요원수가 무려

10만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만약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극한 훈련을 마친

North korea special army 부대원들이 각종 생화학무기를 무기로

전 세계 어디든지 비정규전( counterguerrilla warfare ) 형태로 공격한다면, 민간인들의 희생은

이루 상상하기 어려울 전쟁 양상이 될 우려가 아주 농후하다.

 

 

-(( REF CITE :

. COSMO.JIN TOUR TRAVEL COMPANY CAFE
http://blog.naver.com/cosmojin1


http://blog.naver.com/cosmojin1/150078870190


 


http://blog.naver.com/cosmojin1/150067461762

 

 

. INTERNET "DMZ LINE" => SPECIAL GUIDE INTRO

http://www.dmzcamp.com/home/dmzguide_layout.php?mid=15&t2=1

 

http://www.dmz.ne.kr/

https://www.warmemo.or.kr/eng/intro/message/message.jsp

 

 

. REF KOREA WAR MOVIE


Taegukgi Hwinalrimyeo (태극기 휘날리며) - 2003

 

 

Synopsis :

1950년 6월...

서울 종로거리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진태는

힘든 생활 속에도 약혼녀 영신과의 결혼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 진석의 대학진학을 위해 언제나 활기차고 밝은 생활을 해 나간다.


6월의 어느 날,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호외가 배포되면서 평화롭기만 하던

서울은 순식간에 싸이렌 소리와 폭발음,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해진다.


이에 남쪽으로 피난을 결정한 진태는 영신과 가족들을 데리고 수많은 피난행렬에 동참하지만,
피난열차를 타기 위해 도착한 대구역사에서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만다.

만 18세로 징집 대상이었던 진석은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군용열차에 오르게 되고

진석을 되찾기 위해 열차에 뛰어오른 진태 또한 징집되어 군용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평온한 일상에서 피튀기는 전쟁터로 내몰린 진태와 진석은 훈련받을 시간조차 없이
국군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으로 실전 투입 되고
동생과 같은 소대에 배치된 진태는 동생의 징집해제를 위해 대대장을 만난다.

대대장과의 면담후 동생의 제대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 진태는 그 무엇보다 동생의 생존을 위해 총을 들며

영웅이 되기를 자처하는데...

진태의 혁혁한 전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성공한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북진을 시작한다.

애국 이념도 민주 사상도 없이 오직, 동생의 생존을 위한다는 이유 하나로

전쟁영웅이 되어가고 있는 진태와 전쟁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진석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 평양으로 향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운명의 덫이 그들 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

"태극기 휘날리며" '아우야, 너만은 이 지옥에서 살아남아라'




6·25참전한 형제의 비극 / 상투적 반공·무용담 벗어나 /

중반까지는 너무 느리게 진행 / 종반엔 과장된 감정 묻어 있어



2차대전 이후 발발한 최악의 전쟁, 한국전쟁 당사국에서 종전 50년 만에 전쟁영화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6·25영화가 한편 태어났다. 전후세대인 강제규 감독이 ‘쉬리’를 터뜨린 저돌성으로 한국전쟁을 요리한 ‘태극기 휘날리며’(5일 개봉)는 147억원을 들인 스케일에서뿐 아니라 접근 방식에서 종전의 한국 전쟁영화와 금을 긋는다.

한국의 6·25 소재 영화는 전쟁이 채 끝나지도 않은 1952년 나온 ‘삼천만의 꽃다발’을 필두로 100편이 넘는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해병’(63년작)이 대표하듯 거의 모두 국군의 활약상을 그리며 반공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런 상투성들은 강제규의 ‘태극기…’에서 깨지고 있다.

홀어머니 모시고 살다 전쟁터에 나간 형제를 중심으로 생존과 죽음의 드라마가 2시간30분을 채우는 ‘태극기…’엔 멋진 무용담도, 비현실적 로맨스도 없다. 있다면 지옥 같은 운명 속에서 끝까지 삶의 꿈을 붙들어 보려고 발버둥쳤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몸부림이 있다. 마치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처럼 처절하고 누추하고 더러운 싸움터의 풍경과, 배고픔과 공포와 분노에 떠는 피투성이 병사들이 있다.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구두를 닦으며 동생을 공부시키던 형 진태(장동건)는 집안의 희망이던 동생 진석(원빈)마저 지옥 같은 싸움터에 함께 내던져지자, 죽을 힘을 다해 동생을 지키려 한다. 형은 무공(武功)을 세워 동생을 제대시켜 주려고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랑’은 시간이 흐르면서 ‘집착’으로 변하고, 진태의 연인(이은주)마저 극적인 운명을 맞자 진태의 몸부림은 광기(狂氣)가 되어 폭발한다.

 

6·25라는 악몽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안내하는 전쟁 스펙터클과, 형제의 애끊는 드라마를 두 축으로 삼는 이 대작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서 광기까지 큰 진폭을 보이는 형제간 감정의 템포는 영화 중반까지는 너무 느리게 진행되다가 중·후반엔 너무 가파르게 올라간다. 종반의 충격적 전환(자세한 내용은 영화의 온전한 감상을 위해 밝히지 않는다)엔 과장된 감정이 묻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태극기…’는 오늘의 한국인이 봐둘 만한 영화다. 400만명이 죽었고, 오늘까지도 한국인 삶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 대사건의 실체를 가장 꼼꼼하고 리얼하게 묘사하면서 ‘전쟁은 우리에게 무었이었나’를 절로 음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네댓 차례 ‘폭발’하는 대형 전투 장면엔 절정에 이른 충무로의 특수효과 기술과 연출 역량, 주도면밀한 고증이 총동원됐다. 포탄이 꽂힐 때마다 셰이킹 기법(카메라를 폭발 진동 같은 느낌으로 흔드는 촬영술)으로 다큐멘터리처럼 떨리는 화면…. 폭음은 고막을 찢고, 튀어오르는 흙더미들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다. 전쟁터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하이포리얼리즘(극사실주의)의 경지다. 기록을 토대로 지어진 시가지 세트에서 진짜처럼 만든 셔먼 탱크가 구르고 최민식까지 인민군 장교로 깜짝 출연하는 평양 시가지 전투 장면이 압권이다.

영화에서 내내 몸서리치는 살육과 대비되는 것은 ‘식구끼리 오순도순 저녁 먹는’ 평화로운 일상의 소중함이다. 주인공 진태는 식구들의 안녕을 위해 구두를 닦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전쟁터에서 목숨마저 아끼지 않았다. ‘태극기…’는 그런 선배 세대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가족끼리 서로 보듬고 다독이며 가난한 시대를 헤쳐온 그 시절의 한국인들에게.

(김명환기자 wine813@chosun.com )




[펌글]-386 映畵人이 만들어낸 문제작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에 관한 의문점 / 한승조


2004년 甲申年으로 들어서서 많은 한국인 관중들의 주목을 끌며 최대의 화제거리가 된 한국영화의 문제작으로 떠오른 것이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라는 두 편의 영화다.

이 두 편의 화제작에 공통적인 특징을 추출해 본다면

첫째, 이 두 편이 공교롭게도 요즘 한국의 실세들이라고 할 386세대의 젊은 감독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실미도>를 제작한 강우석은 1960년 생이며,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제작한 강재규는 1962년 생임으로
정도의 차는 있다고 해도 386세대에 공통된 좌경적인 이념성향과 세상에 대한 당돌한 挑戰과 姿勢를 보여준다.

둘쩨, 이 두 영화에 “한국 영화사상 초유의 거대 물량과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실미도>는 총제 100여억원, 7개월간의 국내 최장거리 로케이션, 뉴질랜드 만년설 원정, 지중해 해양 전문 스튜이오 촬영......”


<태극기를 휘날리며>는 총제작비 147억과 10개월간의 촬영, 160여명의 현장 스탭과 2만여명의 엑스트라 동원, 제작진은 20여명의 국내최고 자문위원을 영입, 50년대 시대상황 및 한국전쟁에 대한 조사를 통해
수 만 종의 의상, 물품. 총기, 실제 크기의 탱크와 증기기관차, 장갑차등등....

셋째, 영화제작에 과거에는 想像도 할 수 없었던 巨額 투자를 하면서도 외국영화, 특히 미국의 헐리우드 대작과 겨루어 보려는 경쟁심과 자기 작품에 대한 自信感을 갖는다는 점이 놀라웁다. 강우석 감독은 영화 만들기나 촬영기술면에서도 ‘헐리우드 대작들과 겨뤄보고 싶다는 말을 공공연이 해댄다. 또 흥행 면에서도 이 두편의 國産영화들은 외국영화들 보다도 훨씬 많은 관객들을 끌어드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태극기...>의 主演이었던 장동건도 말하기를 ‘... 이 영화는 나와 한국영화계에 더 나아가서 세계 영화계에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것이다’라고 自信있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은 아마도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최대 激戰地였었던 한국전쟁이 이 영화에서 처럼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예가 없었다는 생각에 의해서 밑받침 되어 있을 성 싶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이처럼 자신들이 하는 일에 큰 포부와 自信을 갖는다는 것은 노장세대로서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감이 보편적인 표준이나 객관적인 평가에 훨씬 못 미칠 때 북한 정권이 말하는 ‘조선민족 제일주의’에 버금하는 ‘우물안 개구리’ 식인 과대망상과 自我陶醉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필자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필자는 이 두 영화의 만들기, 제작기법이나 촬영술에서 헐리우드를 포함한 외국영화보다 뒤진다는 생각은 들진 않는다. 그러나 386세대 영화감독이 갖는 좌경성향의 이념성향과 반국가 의식 그리고 미숙한 역사인식으로 인하여 국제사회의 공명과 동조를 얻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왜냐하면 현대세계의 수준 계층인 지식인들은 국가주의나 전투적인 민족주의에 동조함을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좌파의 반 국가사상, 민중주의(퍼퓰리즘) 자기중심적이며 배타적 민족주의를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넷째, 오늘의 386세대에게 퍼져있는 국가천시와 안보의식의 결여, 반 군부 정서, 반기득권, 반정부감정이
이 2편의 영화속에 짙게 배여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반국가 사상은 국가소멸론을 주장했던 마르크스주의 내지는 네오 마르크시즘의 영향에 의한 것이며, 혁명적인 저항주의는 크로포트킨 류의 무정부주의의 혁명전통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이 영화의 제작자나 연기자들의 사상적 뿌리와 계보에 대해 아는 바 없으나, 북한의 이념 공세화에 영향받아 반공이나 국가안보의식을 냉전시대의 유물로 보아 배격하며, 그들 자신은 그런 舊時代的 안보의식에서 벗어나 있음을 進步的이라고 믿으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誇示하려고 드는 경향을 말함이다.

이러한 반국가주의적 태도로 인하여 그들은 국토방위를 중요시하지 않음과 동시에, 韓美 軍事同盟도 所重하게 유지할 생각이 없다.

또 한국의 386世代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국가 부정에 따르는 민주 자유주의의 사상은 없으면서, 반미 반일의 폐쇄적 민족주의내지는 친북용공의 민중주의(populism)노선에는 매우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는 본격적인 영화라고 하면서도, 그 전쟁의 반 이상의 역할을 했던 미국을 비롯한 UN과 UN군에 대해서는 거의 묵살하려는 시선도 읽을 수 있었다.

다섯째, 어디든지 존재하는 홈 어드벤티쥐로 한국에서는 그나마 큰 반발 없이 다수의 관람객들에 의하여 호응되었다고 치자.


그러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더란드, 벨지움, 스왜덴, 노르훼이, 이태리, 러시아, 폴렌드, 이일렌드, 아프리카제국, 오스트랄리아, 뉴질란드, 일본, 중국, 남미제국 등등 유엔 참전국과 상대 공산진영 나라들이 국내와 동일한 반응을 기대해도 될 것인가?


그 나라 국민들과 영화 전문가들이 한국 386세대의 영화감독들의 좌경성향의 이념과 미숙한 역사인식,
너무 설익은 현대사인식과 철학에 악평을 해 줄 가능성도 많다.

위와 같은 총론에 기반하여 이 영화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문제점들을 지적하겠다.

영화 <太極旗(태극기)를 휘날리며>가 노출했던 문제점


대충 보아도 강재규 감독의 <태극기를 휘날리며>는 강우석 감독의 음산한 <실미도>에 비교하면
훨씬 더 밝고 웅장한 대하사극과 같은 大作이란 印象을 주었다.

실제로 국 내외에 한국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던 영화가 없었던 참에 그 전쟁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데 대한 호감이 가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이 영화에 철학적인 깊이가 너무 빈약했다는·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에서 무슨 철학사상의 깊이와 사상성을 기대하느냐?
20세기 영화의 걸작이라는 것 중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개선문’,‘ 애수’ ‘닥터 지바고’ ‘’대부‘, ’벤허‘등 에 무슨 대단한 철학적인 깊이나 사상성이 있었느냐?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세기적인 명화는 각기 시대적, 사상적인 배경을 깔고 있으면서  사상적문제에서 어떤 어색함이나 의아심이 느끼게 하는 구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태극기를 휘날리며> 란 영화엔 아래와 같이 납득하기 어려운 몇가지 문제점을 노출하였는데 그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 장동건은 입대하여 낙동강 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워서 전공을 세운 결과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는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인 이진태가 용감무쌍하게 싸워서 戰功을 세운 동기가 애국심이나 반공노선을 위해서가 아닌, 단지 어디까지나 사랑하는 동생 지석이를 하루빨리 제대시켜서 후방으로 보내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돌려보내려는 兄弟愛에 기인한 것이었다고 스토리를 설정했으나, 가족애가 소중한 것임은 사실이다만 그것이 국가와 민족 또는 보편적 人類愛 상위에 가치가 설정된 것은 도대체 무슨 사상에 기인된 것인가를 모르겠다.

(2) 그러다가 대대장이 훈장을 보내면 동생을 제대시켜준다는 약속에 대해 훈장을 받은 다음에도 무성의하며
도리어 이진태 下士를 힐책하자 국군이 퇴각하는 틈에 그 上官을 돌로 쳐죽이고 군부대를 이탈하여 공산군으로 넘어 간다. 그리고 인민군 깃발 대장으로 임명되어 國軍에게 대항하여 전투를 벌이다가 다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 진석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난 뒤 다시 총부리를 인민군에게 되돌려 싸우다 장열하게 戰死한다는 줄거리인데,

한국전쟁 중 국군병사로서 근 2년간 용맹스럽게 싸워서 큰 戰功을 세운 사람이 후방에서 그의 약혼녀가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연행되다가 죽임 당함을 목격하자 心境의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다.


또 동생을 제대시켜준다는 약속에 무성의한 응답도 화나는 일이었음도 인정할 수가 있다.


그렇다고 국군 대대장을 돌로 쳐죽이고 敵軍쪽으로 투항 전향한다는 것이나, 人民軍에 막바로 편입되어 전투에 참가하여 동생 이진석 一兵이 배솓된 국군부대와 白兵戰을 벌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믿어질 수가 있겠는가?

보통 전투중에 국군이 인민군에게 투항하면 십중팔구는 직결처분 감이다. 運이 좋다 하더라도 포로로 후송되거나 戰時 勞役에 종사하는 것이지 막바로 인민군의 깃발부대장으로 임명되어 인민군 장교의 少佐 계급장을 달고 인민군 부대를 지휘한다고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 들여지기가 어렵다.

아무리 전쟁중의 혼란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더라도 바로 전에 國軍의 최고무공훈장을 탄 병사를
인민군이 그 본인의 한 마디를 신뢰하여 장교계급장을 달아주어 인민군을 지휘하게 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가 있겠는가?


또 그 형을 찾아 부대를 무단 이탈한 동생 이진석은 국군복으로 전투 중에 상대 인민군 진지를 헤매고 다니는데, 어떤 미친 인민군이 그걸 가만 두겠는가? 여기서 그것이 가능하게 할려면 진석이가 투항했다 전장터의 혼란 와중에 형을 찾아 나서기 전 싸우다 죽은 인민군 군복을 바꿔치기로 입었다면 어느 정도 이야기가 설정된다.

(3) 영화제목이 <태극기 휘날리며>로 되어 있다.


태극기는 대한민국과 그 국가공동체를 상징하며 國軍의 忠誠과 국민전체의 자존심과 名譽의 깃발이다.
그런데 이진태 하사의 반국가적인 언행이나 무분별한 망언, 망동들이 당시 한국청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못한 행동이 너무 많다.


하물며 인민군으로 투항 전향하여 총을 거꾸로 대며 전투하는 李진태 下士= 인민군 少佐(소좌-국군의 소령에 해당))의 언동은 태극기가 아닌 ‘人共旗 휘날리며' 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행동은 아닌지?

(4) 이진태 하사의 동생인 이진석의 태도나 행위는 더 엉성해 볼쌍 사납다.


그는 서울에서 大邱까지 피난 나갔다가 그 형과 함께 국군에 의하여 강제징집 당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을 호송하는 국군 憲兵들과 주먹 싸움을 벌여 싫건 얻어 맞고 국군에 편입된 다음
낙동강 戰線에 투입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진석은 격렬한 전투는 하면서도 물불 안가리고 용감하게 싸우는 형의 행위를 보며 속상해 한다. 형이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도 안 아끼며 그토록 싸우는 것도 하루 빨리 무공훈장을 타 자신을 除隊시키려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형을 고맙게 생각하거나 존경하는 모습을 보이긴 커녕 반대로 인간이 변했다고 경멸한다.


그 자신도 격렬한 전투속에서 단련되어 야수와 같이 사나워지면서도 愛國心이나 護國을 위한 自己犧牲 정신이나 같은 생각이라곤 손틉만큼도 없다. 이것이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국군장병의 보편적인 모습이었던가?
그리고 원빈의 표정엔 변화가 너무 없이 몇가지 표정으로 단순화 된 흠을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꽃미남의 한계가 느껴지는 아쉬운 부분인 거다.

그러다가 다시 전투에 투입되어서 인민군과 白兵戰을 벌이다가 그는 자신이 싸우는 인민군장교가 자신의 형인 진태임을 알고 여러 모로 신호를 보내나 이미 理性을 잃어버린 형을 억제하지는 못한다.

이 영화는 궁국적으로 한국전쟁이 理性을 잃은 同族간 骨肉相殘이며 형제 간의 싸움이였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일께워 주려는 것 같았다.

그레서 그런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영화속에 담았을 것이나 한국전쟁을 그런 식으로 인식시켜주려는 底意가 무엇인가?

2004년의 4.15총선거를 겨냥하여 남북이 和解하고 共助해야한다는 사상을 국민들 속에 주입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특히 4.15총선에 영향주려고 만들어졌으며 04년 2월초에 개봉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이런 영화제작의 의도에 대하여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기념비적인 대작을 만들어낸 의도가 바로 이런 정치적인 목적이었던지 아니면 이런 것들이 모두 偶然의 一致라고 보아야 하나?

(5) 이 외에 이 영화는 한국전쟁 중의 비인도적인 殘虐行爲나 불합리한 처사들을 여러 모로 면에 담았다.


본의아니게 義勇軍에 끌려나왔던 같은 동네 청년 용석이를 포로로 붙잡아 끝내 사살하는 장면이나, 자신도 모르게 보도연맹에 가입하게 된 진태의 약혼녀를 진태가 보는 앞에서 총탄을 맞아죽게 한다든지 또 젊은이 들을 무리하게 강제징집하여 전선에 보내는 야만 행위등도 그 당시에 일어날 수가 있었던 현실이었음을 나도 인정한다.


또 전쟁이 아무리 서로 마구 죽이는 비이성적인 행위라할지라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는데도 동의한다.


그러니까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민족의 비극이었다는 말까지는 받아드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비인도적인 한국전쟁은 ‘미국과 남한이 일으킨 전쟁이다’라거나, 남북한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죄악 내지 범죄행위이라는 인식, 그런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남북한이 적대하지 말고 화해하며 북측이 주장하듯이 민족이 공조하며 미국이 배제되는 가운데 남북한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聯邦制 통일을 조기 실현시킬 수 있도록 모두가 總蹶起 해야 한다는 북측과 친북세력의 선전이나 선동은 不純한 術策이며 경계해야만 하는 친북행위이며 위험사상이다.

이 나라는 김일성의 비밀교시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시쳇말로 ‘사랑을 아무나 하나’란 말이 있듯이 현대 주권국가를 창립하고 그 나라를 지켜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가 있는 일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과업이다.

이런 반국가와 반안보적 좌경화 영화를 보면서 나는 한국이 정말로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나라의 독립과 안정을 소중하게 지키려는 의지를 가꾸어 왔던 국민인지 또 그럴 만한 정치적인 理知性, 국가의식, 애국심 그리고 국민적인 합의 기반을 갖춘 국민인지 다시금 의심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나는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하나는 공산주의 운동의 전략전술 중의 한 항목이 되는 문학과 예술 이용의 원칙이 실감있게 마음에 와 닿었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된 공산주의 전략을 명시한 김일성의 비빌교시가 남한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실천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1978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에서 김일성이 말한 내용을 음미하라.

“남조선에서 들어온 영화, 비디오를 보니까 거기에도 재능있는 작가 예술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잘 나간다는 몇몇 작가들을 재외하고 절대 다수가 실업자나 다름이 없는 형편입니다.


이들에게 혁명적 세계관을 심어주기만 한다면 훌륭한 걸작들이 얼마든지 쏟아져 나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작가 예술인들을 더 많이 포섭하여 직업적 혁명가로 만들고 그들이 외롭지 않게 똘똘 뭉쳐서 혁명적 필봉을 들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묶어 세워야 합니다.

그들이 창작한 작품이 천만 사람의 가슴을 감동시키고,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우리의 혁명적 노래가 적의 심장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요즘 남한의 전 국토를 강타하고 있닌 영화 <실미도>나 <태극기를 휘날리며>등이 바로 이런 비밀교시의 산물이 아니라 반박할 수 있겠는가. 공곰히 검토해 볼 일이다.

또 하나는 오늘의 헝클어진 정치문제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국민정치교육 내지 정신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남한의 殆不足과 북한의 過剩熱氣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음에 주목해야만 한다.

한국전쟁을 하면서도 왜 싸우는 줄도 모르는 남한 군인들과 북한측의 기만적인 정치선전이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화 <실미도>나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보고도 그 뜻이 무엇인지,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지도 판단할 줄 모르는 국민대중 들이 이런 친북 반한적인 영화들에 의하여 感銘 받으며 크게 오도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런 현실이 오늘날 남한을 정치, 경제, 사회를 危機로 몰아가고 있는데 그 뿌리가 되고 있는 것이 이런 영화제작에서 나타난 문화위기이다.

이러한 오늘의 한국 현실을 감안할 때 국민정신교육, 특히 정치교육을 이 나라의 지도층과 지성인들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북한과는 다른 자유롭고 풍요로운 나라와 체제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도 자동적으로,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님을 재인식해야만 할 것 같다.

. 영화 하이라이트 장면

 

 

 

 

. PART 1/17 - START

 

 

 

 

. PART 17/17 - MOVIE END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