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2일 목요일

제로 전투기로 본 일본 제국의 침몰

. 일본 제로 전투기의 치명적 결함  2가지

 

 

 

동양 속담에 " 지피지기백전불태 [知彼知己百戰不殆] " 란 말이 있다.

 

즉 나를 알고 적을 알게 되면 백번 싸워 백번 다 이긴다는 격언이다.

 

우린 어느 한 순간의 우세를 영원한 우승으로 착각하면 안된다.

 

강물이 장엄하게 흘러 가듯 자신의 각종 상황과 상대의 계략을

연구하여, 계속 자신을 그 상황에서 이겨나가는데 전술과 전략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오늘의 영광이 내일의 쓰라린 실패가 될지

모른다는 철리를 아래 이야기에서 배우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한 일본 해군의 함상전투기인 제로전투기는
제식 이름은 영식함상전투기 ( 零式艦上戰鬪機 ) 이며, 일본 해군은
주로 제로센 ( 零戰 ) 으로 불렀다.

 

 

태평양전쟁 초기에는 미국 전투기를 기동성과 항속거리
성능면에서 압도하여 일본의 초반 승리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하였다.

 

일본 해군은 당시 개발되어 있었던 96식전투기(A5M)를
대체하기 위해 1937년 10월 5일 〈12식 함상 전투기 계획 요구서〉를

제안하였다.

 

1938년 4월 10일 미쓰비시사(社)가 제출한 A6M1계획을 일본 해군이

채택하면서 제로 전투기 개발이 시작되고 1939년 3월 16일 호리코시

지로가 설계한 A6M1 1호기가 완성되었다.

 

1호기는 1939년 4월 1일 첫 비행에 성공하였으며 1940년 7월 24일

A6M1을 개량한 A6M2가 영식1호함상전투기1형으로 제식 채용되었다.
 
A6M2는 11형 64대, 21형 740대 등 모두 804대가 생산되었고
1941년 엔진을 교체하여 속도가 빨라졌지만
항속거리는 줄어든 신형 32형(A6M3)이 등장하였다.

 

1943년에는 무장과 엔진을 개량한 52형(A6M5)이 개발되었다.


22형(A6M3), 영식연습전투기11형(A6M2-K), 2식수상전투기(A6M2-N)
등도 많은 수가 생산되었는데 모두 1만 964대가 생산되었고, 그 가운데

가장 많은 52형은 1,100마력의 사카에 21형은 14기통 공랭식엔진 1개를

장착하였다.

 

11형부터 52형까지는 사카에 엔진을, 54형은 킨세이 엔진을 탑재하였다.


무장은 99식 20㎜ 기관포 2문, 97식 7.7㎜ 기관총 2정, 30㎏ 또는

60㎏ 폭탄 2발 등이다.

 

 

쟁 초반 진주만 기습을 감행한 제로 함상 전투기들은 공중전에서

미군 전투기와 붙게 되면 동체가 작으면서 기동성이 훌룡한 제로

전투기를 미군기들은 도저히 당해낼 재주가 없어 보였다.

 

일본이 야심차게 개발한 제로 전투기는 가스터빈으로 추진되면서
상당히 긴 거리를 항속 했으며, 상대적으로 미군기는 제로 전투기에
비해 정교하고 더 육중했으나 공중전 전투시 각종 회전 같은 운용에
너무 둔한 감이 많았다.

 

그러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불시착한 일본 제로 전투기가

알래스카에서 거의 손상당하지 않은 채 미군의 손에 인계되고 만다.

 

당시 미 공군 당국자들은 일본 제로 전투기의 치명적인 약점을
발견하기 위해 당시 불시착한 조종사에게 많은 정보를 빼내게 되었고,
제로 전투기의 치명적인 2가지 단점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바로 제로 전투기의 동체가 상당히 높은 고공에선 동체가

부서진다는 것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두번째 치명적인 단점은 동체 안에 있는 조종사의 안전과 관련된

사안이었다.

 

이 치명적인 단점을 알게 된 미공군 당담자들은 당장 전투기

개발 및 전략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일단 제로기가 날 수 없는 고공으로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을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공중전을 할 때 하강해서 내려와 공격하고
다시 제로기가 못 따라오는 상공으로 더 활강하면 아무리
훌룡한 제로 전투기 조종사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고 만다.

 

또한 미군 당국자들은 또한 제로 전투기의 동체에 기관총으로
관통 실험을 하게 된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제로 전투기 동체는 총탄이 거의 관통하게
되는데 반해 미군기는 총탄을 흡수하여 조종사의 안전을 보장

할 수 있는 동체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미군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당시 미군 전투기 동체 재질은 이미 총탄을 거의 방탄할 수
있는 특수 소재로 개발이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오랜 기간의 숙련된 비행기 조종사의 신변에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대한 우위를
선점하게 된다.

 

즉 일본 전투기 제조 설계자들은 초반에 기습공격이 능한
전투기를 개발한 것에선 앞섰을지 몰라도, 계속되는 공중전을
통해 제로 전투기를 개량하는 것에 치중하지 않고, 조종사의
대량 양성을 신뢰했는지는 몰라도 조종사를 병기로 하는

인간 경시 내지는 인명 소모적인 어리석은 전략을 취하게

되면서 전략적으로 치명적인 패착을 범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전쟁 양상의 변화에 따라 미 공군의 F6F 등 신형 함상

전투기들을 차츰 개발해 내면서, 태평양 상공에서 제공권을 빼앗게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엔 도저히 미군기와 공중전 전투가

불리하게 전개되자, 일본군은 제로 전투기의 용도를 가미카제

특공대를 통한 비행기 폭탄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데 전용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일본 패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숙련된 조종사의 존재 자체는 상당히 중요한 전쟁 자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세가 점차 불리하게 되자 초초하고 당황해진 일본군

수뇌부들은 숙련된 조종사들에게 회항이 불가능한 기름만을

탑재한 채 폭탄으로 함상에 돌진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만다.

 

 

 

이와 같은 소중한 조종사 항공 인력자원을 소모하면서 점점

힘들어진 일본은 드넓은 태평양 대해에서 제공권을 다시

빼았기게 되면서 일본은 어렵사리 점령한 동남아에서 점차

후퇴하게 되고, 원유나 고무 등 전쟁 수행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데 힘들어 진 일본의 패망은 이제 불보듯 뻔하게
되기에 이르게 된다.
 
계속적인 시행착오와 조종사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은 초반 기초

설계에 관한 전술적 변화와 전략의 업데이트에 실패한 일본은

점차 패망의 늪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만다.

 

일본제국 수뇌부들은 만주에서 감행한 인간을 재료로 한

마루타 실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식민지 시민이나

전쟁포로를 이용한 실험이었다지만) 전체적인 인명을 중시하는

대 전략을 설계하는데 인색했었다.

 

고래로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인명과 사람을 경시하는 모든

전략과 전술은 기반이 취약하게 되는건 철리인지도 모른다.

 

사업이든 사랑이든 인생사는 인간을 잃으면 사실 모든 걸

다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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