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3일 토요일

404호 법정

[★]-404호 법정




















오늘의 재판 일정.

사기.
폭행.
간통.
...
공금횡령.
.
다시

폭력 행위에 관한 법률 위반.
음란물에 관한 특별법 위반.

무슨 연유일까?

법정 복도에 놓인 긴 의자에
한 여인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떤 연유로 오셨는죠 ? 라고
묻지마라.
제발 아무 말 말아다오 !

그렇게 고개를 창 밖으로 비틀면서
머언 허공을 응시하는 여인.

404호 법정 판사는
지난한 과오를
지금 어느 묘혈을 도굴해 내듯 캐묻고 있다.

산뫼 허리춤은
새옷을 단장하고
외출 준비 중이언만,

404호 법정 차창녘을 스쳐가는
꽃샘바람은 너무 서늘하다.

법정 중앙통에
원죄의 업은 기립해
지난 해 땀방울들을
보상 받으려는 듯

낭아한 소리로
죄목을 조목조목 토해내고 있다.

원죄는 그렇게
떠밀려 왔다.


가장 커다란 기쁨에서
거대한 쓰나미 물결같은
구슬픈 상흔으로 ...






404호 법정 제2차 공판

이제 삼라만물은 서서히 기지개를 다시 펴고

기나긴 침묵과 죽음의 동면에서 깨어나 다시 유전하기 시작했다.

 

봄이었다 !

 

모든 제 만물은 이제 새옷을 갈아 입고 나들이를 하고 싶다는 듯,

꽁꽁 얼었던 개울가의 얼음장 밑에선

산사에 맑은 물줄기가 흐르기 시작했으며,

메마른 저 나뭇가지 위에선 새로운 새순들이 돋기 시작했고,

메마른 벌판때기 들녘에서 숨을 죽이던

온갖 야생초들이 포근한 봄바람에
그 몸을 술렁거리고 있었다.

404호 법정.

변호인석 자리에 선 국선 변호인은

피해자인 별에게 조목조목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피해자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아주 총명하오.

별을 매우 빼닮았소.


그 눈매는 진한 그리움을 부르오.

 

다시 한 번 선처를 베풀어 준다면 ...
더불어 차분히 숙려해 볼 기회를 다시 갖지 않겠습니까?

시선을 밑으로 내린 별이는 차분하게 대답을 한다.

-하지만-하지만요/-/

슬픔이 우리를 다시 맺어지게 하기엔 너무도
깊은 도랑을 팠어요.

 

그것이...서글프지만/---/결코 거역할 수 없는
뼈아픈 현실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지금 저는 ...

검사는 규정에 따라 피해자를 좌정케 하고, 소환인을 심문한다.

-진짜 가슴 아픈 것은 슬픔이 아니라,

바로 그리움이라는 겁니다.


이제 분명 별이 쏘아 보내는 별빛은 전혀 부재합니다 !

인정하십니까?

 

저 밤하늘 가에 청청히 수놓은 아련한 별빛은 가해자인
그대 가슴 속에 깃들일 그런 여심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수긍하시겠습니까?

죄인은 화가 극에 치오르는 듯, 허공만 응시한 채 나직히 뇌인다.

-전 별이를 믿어요 !
그리고 저 별빛은 아직 제게 유효합니다.

검사는 걱정어린 동정의 눈길로,

피해자를 다시 바라다 본다.

-으흠. 피해자는 이제
당신이란 존재를 정면 부인하는데도 말입니까?

참으로 어리석군요.

- 거저 몽매할 따름입니다. 검사님 !

기다린다는 것은 절대 지루한 게 아닙니다.

제가 알고, 알았던 그래서 절절히 느꼈었던 한 여인의 길 !

그 길은 평범한 여인네의 길과는 완연히 달랐던 길이었죠.

그 길은 바로 영원한 기다림의 길이었어요.

 

별이는 온실 속에서 자라난 그런 화초가 아닙니다.

그녀는 들야, 광야에 핀 한 떨기 야생화입니다,

 

꽃향으로 치자면 화초보다는 곱지 않겠지만,

그 향기는 휠씬 짙고 그윽합니다.

 

다소 거친게 흠이라면 흠이지만요 ...

 

가장 거대한 그리움은 말로 표현할 성질이 아닌 것입니다.


 

그건 바로 눈빛 하나만 가지고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일이며,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요리조리 요동치는 그런 파도물결은 더-더욱 아닌거죠.

사랑은 저 밤하늘 가에 영원히 고정된 별빛입니다 !

 

저 별빛은 흔들리지 아니하며 거저 영롱할 따름입니다.

가혹한 사랑의 채찍이

나 자신의 존재 자체를 후려치건 내려치건,

영원히 나의 뇌리 속에,

심금 속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을 사랑이라면,
천지조화의 농간으로 인해 일어난

어떤 슬픔을 빌미로

그 노기와 분노의 대가를 강청치 아니하고,

인고의 세월 속에 머무름 만으로

거저 삭혀내면 족할 따름입니다.

-그건 당신 혼자만의 착각인 줄,

헛똑똑이이신 당신 역시 잘 알지 않겠소?

흐흠.

검사는 재차 준엄한 언성으로 따져 물었다.

-모든 사람에겐 제각기 다 사연이 있는 것이고. ..

 

어느땐 그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을 법 ...

 

기실 그 숱하디 숱한 사연들이란
한갖 일장춘몽에 불과할 지 모를 일인 줄

그 누가 알겠습니까? 검사님.

일반인들은 연정 타툼에서 실패하면,

대개 노여워하거나, 돌아버리지만
진정한 애정을 느낀 사람은 절대로 그러하진 않을 겁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요 ...

 

그건 그 사람과 저의 그저 서글픈 운명일 따름입니다.

해가 결코 하나 이상일 수 없듯,

다 때가 되면 해는 그렇게 떠오르고 지며
다시 또 십오야 맑은 달은 구름 위로

그렇게 차고 스러지는 법 아닙니까?

저는 별과의 시린 사랑싸움에서 세 번 다 졌습니다.

세 번 모두 패배한 뒤 공교롭게도 허무함 어린 웃음꽃이 이는

건또 ...

난 웃었습니다. 웃어 버렸죠. 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는 웃어야만 했었죠 !

기브스 한 발목으로 목발을 짚고 쩔뚝쩔뚝이며,

시장 봐 온 비닐 봉지를 두 개나 들고서,

언제나 오르내리던 언덕길을

별이가 혼자 오를 때, 난, 나는 언덕길 아래
서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 보면서 웃어야만 했어요.

어쨌든 나는 세 번을 모두 패했습니다.

첫번째 패하고 난 뒤 인생을 바꿨으며,
두번째 패배로 인해 난 운명을 바꾸어야 했어요.

마지막 세 번째의 실패로 인해

저는 저의 모든 소망을 접어야만 했죠.

 

그런 패배자가 짓는 서글픈 미소란

진정 승리자의 만용어린 웃음은 아니었을테지만요.

 

승리자 이상의 그 어떤 의미심장한 관용의 의미가 깃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 웃음은 승리자의 웃음이 결코 아닙니다.

패배자의 허탈한 웃음 !

 

인간적인 자조의 웃음.

부러진 날개를 다시 펼치고서,

저 빈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리는,
간절한 행복만을 소원하는

그런 원이었다면 내게는 가히 족한 것입니다.

검사는 안경테를 고쳐쓰고,

소환인을 응시한 채 재차 심문을 이어갔다.

-대체 뭘 더 바랍니까?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

진정한 사랑을 나눴다 스스로 판단했었지만,

별이가 스스로 나를 규정한 바 그대로,

저는 한갖 욕망의 노리개로 정의해 버린 지금,
처량맞은 들쥐 신세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은 나의 곁에서
그렇게 냉정히 멀어져 갔죠.

 

지금 제 가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으며,
온 살점은 분노로 인해 부들부들 떨려 옵니다.

평소엔 어떻게 감정절제를 다 잡아 본다지만,

진한 술 한 잔을 걸친 연후에
그 오만가지로 피어오르는 감정기복은

제 스스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제 기억의 영상 앞에 여실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추태, 광기, 집착, 고뇌, 번민, 의심,

애먼소리, 폭언, 욕, 게다가 손찌검까지 ......

온갖 상념으로 인해 일그러진 구린

세 치 혓바닥 하며, 형용키 어려운 저 증오의 격정에

가득 차 깊게 패인 주름살 !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에 못이겨 노기가 등등한
가련한 눈빛

 

저는 그렇게 점점 더 음침해져 갔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나의 그 모든 행로에서
점점 더 거칠게 제 스스로를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

다시는 용서받지 못할 강을 건너 간

우서운 생쥐 꼴이 되어 버린 거죠.

-어떻게 이 일을 정리하실 작정입니까 ?

칼자루 쥔 사람은 당신이 아닙니다.

상대방은 피해자입니다.

-그건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한다고 될 성격은 아닙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눈치나 보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나를 어떻게 단속하며

살아 가느냐 란 결단의 문제란 것이죠.

제가 제 자신을 어떻게 통제하고,

그 욕망의 수위을 어떻게 조절해 나가느냐 라는
난제는 진정 더 어려운 숙제란 말입니다.

좌절과 굴욕 !

그래서 그 복수심으로 출발한 시발은 절대

새로운 출발의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새로운 출발이란 좌절감에서라든지,

안달나서 발광떠는 건 아닐 겁니다.

 

단지 새로운 출발점에 불과하다 란 의미일테죠.

걱정마십시오!
저는 가슴 속을 약간 베었을 따름입니다.

-현재 당신의 심경을 말씀해 보시오.

-괴롭습니다. 더 이상 깨묻지 마십시요.

날 헛냥 가만 내버려 두시오.  ///

피해자는 떠나갔고

나는 고개를 숙이며 온 거리를 힘빠진 걸음을 걷는다.


분노에 의해 부들부들 손발이 떨려오고

가슴 속에선 주먹만한 핏덩이가 솟구쳐 오른다.

 

우린 서로 공히 악연을 만났던 걸까 ?

너무 마음이 아프고 쓰다.


이럴라고 사랑을 했나요 ?

오오 가혹한 신이시여 ...

집으로 돌아서는 어떤 귀로.

그 길은 너무도 길고 아득하였다.


 


 


이상의 단편 "날개" 본문 중에서 인용 발췌...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랴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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