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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5일 일요일

[Book] -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 알베르토 안젤라



책 개요 :

고대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인 2천 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로마 제국은 고대 세계를 통틀어 가장 큰 제국과 가장 세련된 문화를 꽃피운 대제국이다.
그동안 로마 제국을 다룬 수많은 책들은 제국의 역사와 정복전쟁, 황제들
그리고 그들의 화려한 생활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 책은 제국의 수도 로마의 일상적인 분위기 속으로 독자를 직접 인도한다.
이탈리아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독자들과 함께 2천 년 전 고대 로마의 하루를 여행한다.

이 매력적인 대탐험은 로마가 가장 번성하던 시기인
기원후 115년의 어느 날 새벽녘에 시작해서 24시간 동안 계속된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독자들은 고대 로마 주민들의 삶에 대한 모든 궁금증과
세밀한 사항들을 낱낱이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당시 그곳의 집이나 거리 그리고 군중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로 생생하게 재현된 하루를 체험할 것이다.

. 저자 소개 :

저자 : 알베르토 안젤라 Alberto Angela

알베르토 안젤라(Alberto Angela, 1962년 파리 출생)는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고고학적 유적지를 탐구하고 조사한 이후,
“디스커버리 채널”, “북서항로”, “율리시스”와 같은 텔레비전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는 데에 헌신했다.

1988년에『인간 잣대의 박물관』을 출간했다.
그리고 부친인 피에로 안젤라와 함께 다양한 저서를 출간했는데,
『태어나는 삶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1996),『상어』(1997),『우주여행』(1998) 등이 있다.

. 역자 : 주효숙

이탈리아어 전문통 번역사. 한국 외국어대학 이탈리아어 전공 비교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탈리아 외무부 번역상을 수상했다.

. 내용 소개 :

대중목욕탕과 더불어 볼일 보고 잡담도 하는 다목적 사교 공간
팍스 로마나 떠받친건 세계 각지에서 데려 온 전쟁노예들… 집집마다 5 ~ 12명 부려

"그녀를 돌려세워 봐! 엉덩이를 보여줘!"
"비싸지 않아요. 거저 주는 거요. 요즘 이런 누비아 출신은 드물어요."
"이마의 끈을 치워봐. 자, 내 말이 맞지, f(도망·fugam의 머리글자) 낙인이 찍혔어!
내가 뭐라고 했어, 도망 노예 라고!"

2000년 전 고대 로마의 노예 시장은 이런 식이었다.

목재 단상 위 동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서 들어온 '신상품'의 목에는 상표까지 걸렸다.
'누비아, 아주 힘셈, 조금 먹음, 다루기 쉬움' '학자, 그리스어 됨, 동양의 중요 가문에서 일했음, 철학을 가르치고 연회에서 시 낭독하는 데 이상적임' '다키아 군주의 딸, 처녀,
집안일과 침대 덥히는 데 최고'….

대부분 전쟁 포로들이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마의 평화) 중에도 어느 곳에선가는 늘 전쟁이 벌어졌고,
진군하는 병사들 뒤에는 노예 상인들이 따랐다.

로마 가정에는 보통 5 ~ 12명의 노예가 있었다.
일부 귀족은 로마 시내에 500명, 외곽 농장에 2000 ~ 3000명을 거느리기도 했다.

이들의 근육이야말로 로마 제국의 힘줄이었다.

하지만 그 유명한 로마법은 주인이 이들을 죽이든 살리든 관여하지 않았다.
노예용 특수 목걸이엔 "도망치지 못하게 나를 붙잡아주세요.
나는 지금 도망 중이에요"라고 씌어 있었다.

아직도 로마에 대해 할 이야기가 남았을까?
고개를 갸웃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멈출 수가 없다.

저자는 로마의 절정기인 기원후 115년 트라야누스 황제 집권기의 어느 날로 이끈다.

그리고 도시의 24시간을 그린다.
마치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한 것을 3D 화면으로 보는 듯하다.

까치 제공 콜로세움의 실황 중계는 손에 잡힐 듯 박진감 넘친다.

당시 검투사와 맹수들은 특수 승강기로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악단의 연주는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사자 100마리가 동시 입장하는 장관에 객석은 열광했다.

그 광기 속에 수십만이 죽어나갔다.
공연이 계속된 4세기 반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좁은 지면에서 최다 사망자를 낸 장소였다.

검투사의 피는 간질병 치료약 혹은 강장제로 처방됐다.
경기장은 무료입장이었지만 뼈로 만든 출입증에는 좌석 번호와 출입문 구역까지 적혀 있었다.
3000명을 수용하는 로마의 공중 목욕탕 정경은 어떤가.

로마인들은 아침엔 고양이 세수만 하고, 오후에 목욕으로 심신을 풀었다.
냉·온·열탕을 오가며 때도 밀고, 운동도 하고, 사업도 논했다.
공중 화장실 풍경도 별나다. 칸막이가 없다.

다들 몇 푼을 내고 입장하면 긴 대리석 벤치에 뚫린 구멍 위로 좌정한다.
요즘 지하철 안 모습과 같다. 볼일을 보는 동안 서로 잡담을 나눈다.

공중 화장실은 포룸이나 공중 목욕탕만큼이나 멋진 사교장소였다.

공동 주택 인술라는 로마 계급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보통 6층 높이에 다락방을 더한 건물. 요즘 주상복합 아파트 비슷하다.

하지만 층별 이용자는 지금과 반대였다.
위층에 가난한 사람이, 아래층에 부자나 유력자가 살았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높을수록 힘이 들기 때문이었다. 안전도 이유다.
당시엔 건물이 높을수록 부실하고 붕괴 위험이 컸다.

화로와 등불을 쓰다 보니 화재도 빈번했는데 저층에선 피하기 쉬웠지만
고층에 살면 속수무책이었다.
그 결과 꼭대기 다락방, 펜트 하우스는 극빈자 차지였다.

이들은 계단 오르내리기가 귀찮아 요강을 그냥 밖으로 비우기 일쑤였다.
황제는 소변·배설물 투기 금지법을 제정했다.

저자는 묻는다. 로마 같은 선진 문명이 어떻게 비인간적인 노예제를 허용했을까.

답은 생산 체제에 있다.

아무리 고상한 문명을 자랑해본들 로마 역시 산업화 이전 사회였다.

노예가 이기(利器)를 대신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사회 투쟁의 결과라고 믿거나 생각하는 일상생활의 많은 측면은
사실 이용 가능한 에너지원의 부산물이다. 여성 해방을 포함해서 말이다."
인권 운동이나 이념 투쟁이 진보와 해방의 원천인 듯하지만, 기술혁신의
공헌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 리뷰:

고대 로마 제국은 형언하기 힘든 매력을 가지고 있다.

로마는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진 방대한 영토를 다스렸고, 인종 또한 북유럽 인종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인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로마는 제국의 중심지였다.

로마 시의 거주민 수는 150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거대한 제국의 수도에 대한 매력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콜로세움이나
황제들의 화려한 기념물들을 볼 때마다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유적지를 설명하는 안내책자는 건축양식과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에만 집중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묘사된 고대 로마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황제들과 전쟁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들과 화려한 연회가 열리는 세계였다.

그러나 고대 로마 제국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던 일반 시민들의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그 궁금증이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다. 고대 로마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거리에는 어떤 분위기가 감돌고 있을까?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의 시합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아름다운 귀부인들의 화장비법은 무엇일까?
연회에서는 무슨 음식을 먹었고, 또 그 맛은 어땠을까?

이 책은 한 인물(화자)의 하루 여정을 따라 고대 로마 최전성기의 사회를 그리고 있다.

물론 상상에 의한 내용이지만 그 안에 담긴 세부적인 사항들은
고대 로마 유적지에서의 고고학 연구와 발굴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하루의 일정을 따라 여행을 시작한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에서 시작된 여행은 우선 제국의 아침 일상을 보여준다.

부자들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귀족 남성의 몸단장과 여성의 화장비법 그리고
그 주인들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는 노예들의 삶이 펼쳐진다.

아침부터 로마의 모든 거리가 사람들로 붐빈다.

노예들은 하루의 노역을 시작하고, 상점과 작업장은 하루 장사를 준비한다.
그 많은 시민들이 거주하기 위해서 로마에는 거대한 고층의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이 로마의 공동주택은 현대의 아파트와 흡사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현대의 아파트에서는 부자들이 고층을 차지하는 반면
고대 로마에서는 저층을 차지했다.

전기가 없던 시절, 그리고 화재가 빈번하던 시절이므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로마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곳에서 사교적인 만남을 하기도 했다.

공중 목욕탕과 거리의 포룸들은 대표적인 사교장소였다.
심지어 공중화장실도 그러한 역할을 했다.

콜로세움은 오늘날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2천 년 전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콜로세움에 들어가서 죄인들에 대한 공개 처형 장면과
맹수와 인간의 싸움 그리고 검투사들끼리의 시합을 보며, 그곳에서 로마인들이 느꼈을
충격과 흥분을 체험할 수 있다.

오후 4시경 로마인들은 저녁을 먹었다.
이 시간부터 6 - 8시간 정도 계속되는 연회를 베풀었다.

그리고 그들의 연회는 포도주를 마시고,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사교의 장이었다.

다만 연회의 마지막은 성(性)이 배제되지 않은 채 마무리되기도 했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하루의 여정을 따라 고대 로마의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로마, 고대에서 가장 화려한 문명을 꽃피운 로마,
그 로마에서의 특별한 하루가 이제 시작된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어느 날에…….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주효숙 옮김|까치|396면|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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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벤허 전편 감상: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2010년 10월 24일 일요일

"Lieana Tacconelli 선생님 너무 섹시해서 공부를 못하겠어요" - 이탈리아

 


‘코리에레 델라 세라’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2001년 미스 이탈리아 대회에 출전했다가 입선하지 못했던, 일레아나 타코넬리 (Lieana Tacconelli, 28) 양이 이탈리아 중부 지방인 밀라노 소재 가톨릭 계 명문 ‘ 산 카를로 가톨릭 고등학교 ’의 여교사로 부임하자 학부모들간 심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맡길 수 없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타코넬리 양이 포르노는 아니지만, 야한 영화들에도 출연하고 누드에 가까운 모델 활동도 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 학교 교장인 알도 제란차니 신부와 남자 학부모들은 타코넬리를 반기는 눈치다. 더욱이 그녀의 일부 지지층들은 팬클럽까지 만들며 환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1년 ‘미스 아브루치(이탈리아 중부 지방) 선발대회’에서 우승한 타코넬리는 ‘미스 이탈리아’까지 도전했으나 입선하지 못하고, 결국 그녀의 꿈인 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서 3개의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내가 원했다면 현재 모델이나 쇼걸이 됐을 것”이라며, “이곳에서 3년 동안 교사로 재직하면서 아무 문제 없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한 코믹 동영상을 보면 타코넬리는 핫팬츠에 브래지어만 달랑 걸친 모습이다. 미국 경찰 제복을 입고 촬영한 사진도 있다.


그러나 지난 이력에 대해서 타코넬리 양은 “ 교사직은 나의 천직이다.  ”, “  나의 과거는 오래 전 일이고 현재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전념할 것 ”이라고 전했다.

 

동료 교사 오스발도 손지니는 “  타코넬리 양이 엄격한 교사 자격 요건을 모두 갖췄다 ”면서 “우리는 그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며 이런 일부 학부모들의 배타적인 반응은 너무 지나치다고 그녀를 적극 변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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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acebook.com/pages/Ileana-Tacconelli/122908577767301

http://www.youreporter.it/video_Video_Esclusivo_di_Ileana_Tacconelli_1

 

. 중국 국어교사 주송화 양 미녀 반열에 등극

http://seoultour.textcube.com/485

 

 

PC 렌탈 전문업체 링크



 


 

2010년 9월 14일 화요일

중국에 수천년만에 처음으로 점령당한 이태리 패션업계

 

(中) 중국 노동자들, 이태리 (伊) 프라토 의류산업 완전 장악 / 3200개 업체서 中 원자재로 생산 수출, 伊 이탈리아 정부선 “ 대부분 불법 사업” 적대적


 

. 1939년 중국 텐진에 진주한 이탈리아 군대

http://blog.naver.com/mig17/150033794481

 

 

그 이탈리아 땅 위에 세상 어디에나 흔한 화상이 운영하는 전통 중국 요리집이 무성히 생겨났다.

 

베네치아에 성업 중인 중국 음식점 모습

 

이태리 땅에도 세상 어느 곳에나 감지되고 있는 중국의 거대한 사람의 물결이 마침내 밀어 닥쳤다. 역사상 중국이 어느 한 분야이나마 위대한 고대 로마제국의 땅 이탈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2조 4천억 달러의 현찰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며 거대한 중국의 용이 하늘을 찌를 듯 국운을 떨쳐 버리는 한 증좌로 여겨져야 할 현상 중 하나라 보인다.

 

전 세계로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며 살아가는 중국 노동자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가 패션 제품을 생산하는 이탈리아가 중국인들에 의해 함락되고 있다. 이민중국인들이 중국 재료를 수입해 중국인 노동자의 손으로 만든 제품에 ‘ 메이드인 이탈리아 ’ 상표를 붙여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수익금은 즉각 중국으로 송금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 인근 성곽도시 프라토는 예로부터 모직물 공업이 발달해 ‘ 이탈리아의 맨체스터 ’라고 불렸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인들이 이민하기 시작해 이제는 수만명이 거주하면서 도시 전체가 저가  ‘ 이탈리아산 ’ 생산기지로 전락했다고 뉴욕타임스가 12일 보도했다.



이탈리아 고도 피렌체 시




중국·유럽의 도매상들이 차를 대고 보따리장수처럼 물건을 실어 나르는 광경은 이제 이곳에서 낯설지 않다. 이곳에서 3200여개의 중국 업체가 중국에서 수입한 재료로 옷과 신발, 액세서리 등을 만들고 있으며 생산품은 도매상들을 통해 세계 각처로 팔려나간다. 프라토에서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상인들은 관세를 내지 않고 이탈리아제 물건을 값싸게 구할 수 있다.

1991년 중국에서 이곳으로 건너가 의류회사를 차렸다는 장리는 “중국, 멕시코, 베네수엘라, 요르단, 레바논 등 30여개국으로 물건을 수출한다”고 말했다. 그의 고객 중에는 자라, 망고, 게스 등 유명 브랜드가 포함돼 있다.



프라토는 전체 인구 18만7000명 중 중국인 이민자가 1만1500명이다. 이 외에도 중국인 2만5000여명이 불법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인들은 시나브로 도시를 점령해버린 중국인들에게 적대 감정을 품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불법으로 사업을 하고 세금도 잘 내지 않으며 현지 투자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은행에 따르면 이 지역 중국인들이 중국으로 송금하는 액수가 하루 150만달러에 이른다.

 


정부는 이들 중국인들이 불법으로 일하고 매춘, 도박, 돈세탁 등 범죄에 관련이 깊다고 보고 지난 6월 집중 단속을 벌여 24명을 구속하고 100여개의 업체를 조사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이들의 숫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불법 영업하다 문을 닫은 가게는 이내 다른 이름을 달고 다시 문을 연다. 이탈리아인들이 운영하던 직물 업체들은 2001년의 절반 수준인 3000여개로 줄어들었고 이들 중 200여개는 중국인들이 인수했다. 한때 이탈리아의 주요한 직물 생산지이자 수출 기지였던 프라토는 이제 필요한 직물의 27%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중국인들은 “우리가 없었으면 이 도시가 언제 현대화되었겠느냐”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이탈리아 정부가 정작 이민할 때는 아무런 말도 없다가 이제와서 혹독한 탄압을 가한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   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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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프라토市 3D 노동자에서 사장님으로… 섬유·의류기업 4곳 중 1곳

소유 철마다 돈 되는 옷 바로 생산… '패스트 패션' 붐 타고 대목

 

콧수염을 기른 전페이화(陳飛華·44)씨는 유럽에서 제법 잘나가는 중국인이다. 방 4개 딸린 아파트에 살고, 5만유로(6800만원)가 넘는 BMW730 승용차를 몰고, 한 갑에 4유로(5500원)인 말보로 담배를 하루 4~5갑씩 피워 댄다.

 중국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출신인 그는 10년 전 이탈리아 중부의 인구 18만명 작은 도시 프라토(Prato)로 이주했다. 고향인 원저우에 있을 때 작지만 어엿한 옷 가게 주인이었던 그는 이탈리아 생활 초반 잡일과 재봉일부터 했다. 공장 창고에서 밥을 해 먹고 잠을 자는 궁핍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7년 전 그는 원저우 동업조합에서 돈을 빌려 '신스다이(新時代―New Moda)'라는 자기 회사를 차렸다. 처음 3명으로 시작했는데, 그동안 이탈리아인 여직원 한 명을 포함해 직원 10명으로 커졌다. '미키(Micky)―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 브랜드를 달고, 북유럽에 한 벌 당 10유로(1만3500원) 정도에 팔려 나간다. 1년 매출이 300만유로(40억원) 정도다.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저임금 중국인 노동자들이 만드는 옷이지만, '메이드 인 이탈리아' 브랜드를 달면서 한층 부가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프라토 시가지에서 약간 떨어진 섬유 산업 단지로 들어서자마자 '부기(富奇)', '동문(東文)', '청송(靑松)' 등 한자(漢字) 간판이 즐비했다. 1992년 212곳이었던 중국인 업체는 2354곳(2006년 말 기준)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이제는 프라토 전체 섬유·의류 기업의 25% 정도를 중국인이 경영한다.



프라토(Prato)는 '이탈리아의 맨체스터'로 불려 왔다. 18세기 이후 면직(綿織) 산업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아르마니·프라다·베르사체 등 귀에 익은 명품 기업들이 지금도 프라토산(産) 옷감을 사 간다.

그래서 1980년대 말 원저우 중국인들이 프라토로 이주하기 시작했을 때, 사실 프라토 사람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초창기 중국 불법 이민자들은 이탈리아 인들이 기피하는 3D 일자리를 메웠고, 싼 임금에 생산력도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세력을 확장해 나가던 지난 20년 동안 프라토 이탈리아인 기업 10곳 중 한 곳은 문을 닫았고, 10명 중 1명의 이탈리아 인들이 직장을 잃었다.

이제 프라토에는 중국인이 3만명 이상 산다. 시 인구의 20% 가까운 숫자다. 그 중 90%는 원저우 출신이다. 처음에는 날품팔이하는 노동자들이, 20년 전부터는 재단사들이, 15년 전부터는 미싱사들이, 4~5년 전부터는 염색을 할 수 있는 기술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프라토 원저우 동업조합 필리포 장(45) 부회장은 "패션 본고장에서 중국보다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메이드 인 이탈리아' 옷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프리미엄"이라고 말했다. 프라토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이탈리아 사장 밑에서 험한 일을 하다가, 얼마 안 가 회사를 사들이고, 나중에는 이탈리아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단계로 발전해 나간다는 설명이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 브랜드를 중국인이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프라토 중국인의 무기는 순발력이다. 12월에 여름 옷을 6월에 겨울 옷을 기획하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방법과는 달리, 돈 되는 옷을 바로바로 생산해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제철에 빠르게 생산해 입고 미련 없이 버린다는 의미에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라고 불린다.



최근 유럽 전반에 자라(Zara), H&M 등 패스트 패션 붐이 일면서 프라토 중국인 기업들은 대목을 맞고 있다. 덩달아 프라토 섬유산업도 호황이다. 원단 수입업자인 가브리엘레 사네씨(Sanesi)씨는 "15년 전만 해도 타산을 맞추지 못한 이탈리아 섬유회사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었는데 그 틈새를 중국인의 패스트 패션이 메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라토 상공회의소 다리오 카세르타(Caserta) 국제국장은 "도대체 중국인이 운영하는 공장에는 제대로 된 노동계약서가 없다"며 "누굴 고용하는지, 공장 안전·위생 기준을 지키는지, 고용보험은 제대로 내는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고 쏘아 댔다.



프라토 토박이 실비아 감비(Gambi·32)씨는 "중국 사람들은 다들 큰 차를 몰고 다녀 가뜩이나 좁은 도로가 더 좁아졌다"며 "중국 글자로만 된 간판이 너무 많아 알아먹을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프라토에서 가장 큰 중국 상점이라는 '샤오린수퍼마켓(小林超市)' 앞에는 두껍고 허름한 점퍼 차림의 중국인 남녀 약 40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이들의 눈은 온통 '구인(招工)판'으로 향해 있었다. '12월 4일, 의류 포장할 여공 수명 모집, 전화 338-○○○○'…. 전광판 모양의 디지털 구인판은 1분마다 화면을 바꿔 가며 90여개 정도의 일자리를 소개하고 있었다. 온통 중국어로만 되어 있었다.

프라토에서 부동산 사무소를 하는 쉬처(徐策·33)씨는 "월급 700유로(95만원)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이 아직 대륙에 넘친다"며 "중국인들이 제2, 제3의 프라토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프라토(이탈리아)=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


 



2010년 8월 18일 수요일

중국, 랴오둥 다롄 ~ 산둥 뤼순까지 ‘바다 만리장성’ 추진

펑라이시 중국 세부지도 링크

 

보하이만을 가로질러 106㎞ 해상대교 건설 …

완공 땐 다롄 ~ 칭다오 거리 1000㎞ 단축

 

중국이 보하이(渤海)만을 가로질러 랴오둥(遼東)반도와 산둥(山東)반도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해상대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경제관찰보와 홍콩 봉황위성TV는 17일 “중국 국가발전개발위원회·교통운수부·철도부가 보하이만을 가로지르는 해상대교 건설의 타당성 연구와 건설 계획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발전개발위는 산하에 ‘보하이 해협 교통전략기획 연구소조’를 발족시켜 ‘바다 위 만리장성’을 세우는 이 프로젝트를 지난해 10월부터 구체화하고 있다. 최근 연구소조는 1차 보고를 통해 ▶해상대교 ▶해저터널 ▶대교+터널의 설계방안을 내놓았는데 현재까지는 해상대교 방안이 유력하다.

 

이 대교는 랴오둥반도의 끝 뤼순(旅順)에서 산둥반도의 펑라이(蓬萊)까지 바다 구간 106㎞를 연결한다. 두 반도를 잇는 최단거리다.

 

 

차량과 기차가 별도로 다니는 복층 교량이 건설된다. 두 지역의 거리가 106㎞에 달하지만 중간에 10여 개의 섬이 있어 양쪽 반도를 바로 연결하는 것은 아니다.

 

이 대교는 환(環)보하이 경제권 경제 통합의 핵심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환보하이 경제권은 7개 성에 걸쳐 인구 3억 명이 밀집한 지역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중국 전체 GDP의 31%를 차지한다.

 

중국은 "주장(珠江) / 창장(長江) 삼각주 경제권" 이어 중국 경제 발전의 3대 기관차로 " 환보하이 경제권 " 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이 대교가 건설되면 랴오둥반도의 산업도시 다롄(大連)에서 산둥반도의 칭다오(靑島)까지 약 1000㎞의 거리가 단축된다.

 

다롄과 칭다오 산업지대가 베이징(北京)·톈진(天津) 산업단지와 결합되는 대형 산업 클러스터가 탄생하는 것이다.

 

펑라이의 멋진 바다절경

 

문제는 기술력과 천문학적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다. 홍콩명보는 총건설예산이 2000억~3000억 위안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기의 대역사였던 싼샤(三峽)댐 건설비용(1700억 위안)을 능가한다.

 

연구소는 하루 3만 대의 차량이 이용할 경우 연간 130억 위안가량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변의 지가 상승, 여행 수익, 고속도로 통행료 등을 포함하면 매년 200억 위안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대로만 되면 10~15년 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항저우 대교

 

또 현재 세계 최장거리인 36㎞에 달하는 항저우(杭州)대교를 개통시켰기 때문에 랴오둥반도와 산둥반도 사이의 섬들을 잇는 기술력은 검증됐다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막대한 비용 때문에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달기도 했다.

 

홍콩= 정용환 특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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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보하이만 ~ 황해 잇는 '중국판 수에즈 운하' 건설 추진
http://www.onbao.com/news.php?code=&mode=view&num=15224


. 산동성 펑라이
http://100.naver.com/100.nhn?docid=181010

 

. 펑라이 봉래각 계절별 감상 (한중국제교류센터 통합카페)

http://blog.naver.com/krcn21/70078077184

 

산동성 몽산 풍경

 

. 펑라이 고대 유적지
http://cafe.naver.com/ytourhome/78

http://lovechina.tistory.com/96

 

. 안중근 의사가 투옥된 뤼순 감옥
http://ko.wikipedia.org/wiki/%EB%A4%BC%EC%88%9C%EC%BB%A4%EC%9A%B0_%EA%B5%AC

 

뤼순 감옥

안중근 의사

 

. 상하이와 저장성 닝보시를 연결하는 대양교량인 항저우 대교

http://ballocha.blog.me/100050327492

http://blog.naver.com/yoo9113/70072218417

 

그러나 C자형태의 반도만을 둘러가는 1000km은 길은 폭증하는 물동량을 감당하기 더 어려워 졌다.

먼길을 둘러가는 것보다 한시간 내외로 사람과 물동량이 도착하는 직선항로 개발 방법은 여러가지인듯 하다.

 

이런저런 계획만 무성할 뿐 ...

 

. 다롄 ~ 옌타이 직선 노선도 검토 중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8/18/2010081800129.html

 

. 보하이만(발해만) 해저 터널도 계획 중

http://www.yonhapnews.co.kr/economy/2010/08/17/0302000000AKR20100817080800097.HTML

 

 

. 도교 노자의 고향 칭다오(청도)의 명산 감상

http://blog.daum.net/solbright/7067818

 

. [펌]-상하이(상해) 항저우, 황산 기행

http://blog.daum.net/jschoi0207/8613813

 

. 지갑 두툼한 중국 ~ 세계가 눈치본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10/2010091001313.html?Dep1=news&Dep2=headline2&Dep3=h2_06

 

. 중국정보 온바오 닷컴

http://www.onbao.com/ 

 

. [김대중 칼럼]-중국의 고로바초프 적 전환
http://seoultour.textcube.com/336

 

. 중국 관련 정보창 - 이 사이트의 컨텐츠와 링크는 앞으로 점점 업그레이드 시킬 생각입니다.

http://china.ba.ro

 

. 아직도 먼 한국, 수출 1위 제품은 52개, 중국은 1210개
http://onbao.com/news.php?mode=view&num=28819

 

. 수천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에 점령당한 이탈리아 원단 패션업계
http://news.nate.com/view/20100913n24537?mid=n0307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바깽이의 이탈리아.스위스 여행기 연재 / 대학로 디마테오 피자

오마이뉴스 해외 리포터 :

 

바깽이의 이탈리아.스위스 여행기 연재

 

http://www.ohmynews.com/NWS_Web/i_Room/Imprint/Article/Writed_Article_List.aspx?MEMCD=00052914

 

 

 

 

. 디마테오 이태리 피자 전문점

 

텔런트 이원숭 씨가 직접 운영하는 대학로의 피자 명소 -

정통 이태리 피자 전문점 

 

( 이화.연건.충신.명륜.종로56가,대학로 주변 배달 가능)

 

 

배달 및 온라인 예약 전화  :

(02) 747-4444

 

 

http://sallysulbo1.mireene.com/view.php?id=ruvin&page=5&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