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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일 금요일

. 한국에 간 중국의 조선족들, 연간 9천억 벌어들인다


▲ [자료사진] 지난 8월말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중국인 거리 풍경.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어 간판과 중국어 간판 숫자가 엇비슷했으나, 요즘은 중국어 일색이다. 
국내에 진출한 중국 동포의 일자리가 다양해짐에 따라 ‘조선족 경제권’인 이 지역에서 
중국인 간의 부동산 거래와 투자도 활발해지고 있다. / 사진=조선일보 제공 

한국에서 취업한 연변 조선족 자치주 조선족들이 연간 8억달러(9천27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관영 통신 중국 뉴스넷(중국 신문망)은 지난달 23일 지린성(吉林省) 연변주 취업 사무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에서 지난 2007년 '방문 취업제'가 허용된 이후, 매년 출국하는 조선족 수가 20만명에 달하는 가운데 대다수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8억달러라고 보도했다.

연변주 취업 사무국 농촌 지도 서비스과 김신옥(金信玉) 과장은 "한국 등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중국보다 많기 때문에 많은 조선족들이 해외 취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례로 한국에서 단순 노동을 하더라도 최저 임금은 월 6천위안(106만원)으로 연변 지역의 임금보다 3~4배 가량 높은 편이다. 목공 등 기술자는 8천위안(146만원), 고급 기술자는 2만위안(355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중국 뉴스넷은 "한국에서 일하는 조선족들이 번 외화를 연변으로 송금하는 덕분에 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시(延吉市)의 소비 수준은 지린성 성도인 창춘(張春)에 버금간다"고 평했다.

또한 "국제 금융위기 여파로 한때 한국 내 조선족이 대거 귀국했으나 경제가 회복되면서
다시 한국으로 가는 조선족이 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연변 지역의 경제도 활기를 띠고 있다"고 소개했다.

연길시는 지난 4월 해외 기업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취업을 알서하는 해외 노무 지원센터를 개설해 현지 주민의 해외 취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한편 연변 조선족 자치주 취업 서비스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변 도시인구의 7분의 1, 농촌인구 가운데 3분의 1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언어가 통하는 한국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천년대계로 건설된 로마제국의 인프라스트럭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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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대계로 건설된 로마제국의 인프라 스트럭쳐 
  
                       ◀=  바로가기  (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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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천년이 지나도 건재한 로마가도 / 로마제국의 인프라

h/w :
도로.교량.항만.신전.공회당.교회.광장.극장.원형 경기장.수도관.경기장.공중 
목욕장.하수관 등

s/w :
국방.치안.조세.의료.교육.우편 등

일반적으로 잘 닦인 도로가 인프라로 건설되면 그 지역은 자동적으로 소득증대와 
 물자 이동의 원할함으로 인한 자급자족에서 벗어난 교역이 활성화 됩니다.
 
그러므로 로마는 패자가 승자에게 대드는 이유 중 두가지인 경제적 불만과 자치권
 탈취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주 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패자와 동거로 인한
 정착 통치 방식에서 벗어나 멀리 군단기지 주둔 방식에서의 통치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 당시 로마 보병들은 하루에 대략 6시간 정도 행진했으며, 시속 5~6 km 정도로
 행군 했습니다.
 
하루에 대략 25 ~ 30 km 정도의 행진 속도인데, 로마에서 북단 최전방인 라인강 
하류 괼른 기지까지는 대략 한달 정도 강행군 해야 갈 수 있는 거리였다고 합니다.
 
이와는 달리 로마 기병은 하루에 대략 50 ~ 100 km를 달렸습니다.
 
20 ~ 30만명이 결코 작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30만 (15만 정예 중무장 보병 + 
15만 속주 보조병) 정도의 병력으로, 5천만명의 광대한 로마 제국 시민과
10,000 km 가 넘는 국경선을 완벽히 지켜내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게 바로 군단기지에서 전장터로 신속히 이동이 가능토록
해 준 게 바로 로마가도였습니다.
 
아울러 로마의 우수한 전법은 병참에 있었죠.
 
싸움에 앞서서 병력이나 무기 제조, 후방 세력과의 협약 그리고 군량과 식수 
공급선 확보 측면에서 북방 야만족이나 동방 파르티아 부족보다는 항상 앞서
갔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신력 같은 불확정요소 보다는 확정 요소를 미리 챙긴 면에서 
기실 몇천년이 지난 제2차 세계대전 시 대일본 제국이 정신력 같은 불확정
요소에 강력히 치중한 싸움보다는 어떤 면에선 더 우수했던 전략적 측면도
돋보입니다.
 
거대한 제국 통치 지역을 불과 20~30만 군인으로 거뜬히 통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군단의 신속한 이동과 번개불처럼 신속히 전달되는, 각 지역의
정보에 대한 신속한 활용과 통제 그리고 전달체계에 있었던 겁니다.
 
만주벌의 야만족을 막기 위해 진시황이 건설하기 시작한 만리장성은 16세기 
명나라 시대 때까지 무려 5000km을 세갈래 줄기로 광대한 중국땅을 가른
방책선을 세웠던 것으로, 유명한 역사적인 대역사입니다 만은
 
그것은 
사람의 왕래를 통제하고 차단하는데 기본 목적이 있는 반면 기원전 3세기에
시작되어 500년간 줄기차게 로마 군단병이 전쟁 시기 이외에 건설한 로마
가도는 간선도로 만 80,000 km 에 지선도로까지 합치면 무려 150,000 km로
 만리장성의 16배 ~ 30배를 웃도는 거대한 로마가도를 완성시킵니다
 

이탈리아 최고의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 가 분한 "미션 클레오파트라"
http://www.diodeo.com/tv2tv/001026664 http://blog.naver.com/winseung/7004204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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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마제국의 멸망
                               서로마제국의 멸망   (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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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족
훈족

. 훈족
아틸라 왕 (Attila, 406 ~ 453)
5세기 전반의 민족 대이동기에 지금의 헝가리인 트란실바니아를 
본거(本據)로 하여 주변의 게르만 부족과 동고트족을 굴복시켜 
동쪽은 카스피해에서 서쪽은 라인강에 
이르는 지역를 지배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동로마를 위협하여 조공(朝貢)을 바치도록 하였으며, 갈리아에 침입하여 오를레앙을

공격하였다(451).

 

이에 대하여 서로마는 서고트 및 프랑크와 동맹군을 편성하여 맞아 싸우려고 하였으므로

아틸라는 철군을 개시, 돌아오는 도중 마우리아쿠스(샬롱쉬르마른의 남쪽)의 벌판에서

연합동맹군에게 패하여(카탈라우눔전투), 서유럽의 정복을 단념하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북이탈리아에 침입, 로마에 육박하였으나, 로마교황 레오 1세의 설득을 받아들여

철군하였다.

 

그 후 본국으로 돌아와 재차 동로마 침입을 기도하였을 때 급사(急死)하여 대제국도
붕괴되었다.

 

그의 이름은 《니벨룽겐의 노래》 등의 전승문학(傳承文學)에는 에첼·아틀리 등으로
나타나 있다.

. 흉노족
흉노족
.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콤모도스 황제가 나온 '검투사' 2000 영화
'검투사' 2000 영화
. 저녘마을 블로그
저녘마을 블로그
 
. 로마를 멸망시킨 건 '萬里長城(만리장성)' 이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12/2010111201884.html